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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회 연구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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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주사회 연구 종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모든 종교는 경외감을 포함하며, 신자들의 공동체에 의해서 실천되는 의식과 연결된 상징들을 포함하고 있다(기든스, 1996:481). 현대의 종교에는 기독교, 개신교, 불교, 이슬람 등이 대표적이며, 그 외 세계 곳곳에서 전해지는 민간신앙들이 존재한다. 한국사회는 이러한 종교들이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그들끼리의 갈등은 크지 않은 독특한 지역이다.
일반적으로 종교는 중세의 절대권력이었지만, 중앙집권 국가의 형성에 의해 점차 권력을 잃게 되었다. 하지만 몇몇 국가에서는 종교세력이 집권을 하거나, 국교로 정해진 곳도 있으며, 한국의 경우 종교집단들이 거대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행사하고 있기도 하다. 근대화 된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은 굳건하기도 하지만, 종교성이 퇴색해 세속화되기도 한다.
산업화 이전, 제주도와 같이 모질고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안팎으로 어려운 삶의 조건들을 극복하는데 민간신앙은 한 몫을 했다. 특히 무교는 사람들이 현실의 고통을 잊고 초월적 존재에 의지하는데 도움이 됐다. 고려 이전 제주도 신앙체계는 무교 하나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후 불교와 유교, 그리고 근세에는 기독교가 전파돼 왔지만 제주사람들에겐 무교적 심성이 면면히 이어져 왔다(이상철, 2003:82).
당, 심방 등 제주도의 민간신앙은 제주인의 현재적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신앙인구는 감소하고 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준 것은 제도종교인데, 그 중 불교의 영향력이 가장 큰 것으로 볼 수 있다. 불교는 무속과 심리적 거리가 거의 없어 쉽게 편입될 수 있고, 이미 역사적 과정에서 무속과 상당부분 습합되기도 했지만, 제주도의 사찰에서 적극적으로 무속 신앙민의 욕구를 부응해 불교도로 전향시켰기 때문이다(하순애, 2003:255). 그러나 당을 찾는 일은 줄어들 수 있지만, 개별적인 신앙행위를 위해 심방을 찾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하순애, 2003:256)은 지금의 추세로 볼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당은 공통의 기원을 비는 것인데 비해, 심방을 찾아서 푸닥거리를 하는 것은 개인적 차원의 리추얼(riual)이기에, 개인주의화가 진행되는 근대사회에서 선택적 친화력을 갖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민간신앙 말고도 제주지역에는 1960년대 이후 일본에서 유입된 종교도 있는데, 창가학회, 일련정종, 천리교 등이 있다. 이는 성공한 재일교포의 믿음을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면, 자기들도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에서 였기도 하며, 또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도 있었다(조성윤, 2005).
제주에서는 유교제례인 기제사가 활발하게 집행되고 있는데, 사회변동에 따라 기제사의 형식과 내용도 많이 변하고 있다. 특히 감귤 등 환금작물의 재배이후, 경제력을 바탕으로 한 부농계급에서 혈연공동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려는 행태들이 등장하고 있으고, 제사시간도 앞당겨 지고 있기도 하며, 제수음식으로 수입과일과 빵들도 올라가고 있는 등 금기에 대한 변화도 있다(현혜경, 1999).
다음으로 또 다른 의례인 벌초의 변동에 대해 살펴보자 다음카페 ‘당산서원’ [제주사회연구] 수업게시판에 올렸던 내용입니다. (//cafe.daum.net/dangsan-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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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변동에 따라 벌초의 기계화, 상품화가 진행되고 있다. 농촌에 트럭 뿐 만 아니라, 예초기가 보급되고 난 이후, 몇날 며칠에 걸려서 하던 벌초는 불과 하루에 끝장내버릴 수 있는 것이 되었다. 트럭은 이동시간의 축소, 예초기는 노동시간 뿐 만 아니라 노동력의 축소를 발생시킨다. 엄청난 변동이다. 이제는 내가 벌초하러 가면 할일이 거의 없다. 풀을 베는 흉내, 시늉 혹은 말 그대로 연기라도 해야 할 판이다. 특히 문중벌초라도 가면 장정 10여 명 중 예초기를 든 2~3명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풀 몇 번 나르고는 절하는 시간이 돌아오고 마는 것이다.
벌초를 일찍 마칠 수 있기에, 이제는 도시락을 챙기지 않는다. 그저 과일과 술 등 간단한 제사음식 몇 개만 챙기고 떠난다. 그리고 점심은 근처 식당에서 사먹는다. 여인네들은 새벽부터 점심도시락을 챙기지 않아도 되었다.
이처럼 기계화는 벌초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것 때문에 우리 아버지는 예초기를 거부하고, 아직도 큰 낫으로 벌초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물론 1년에 단 하루를 위해 예초기를 사는 것은 비합리적이긴 하다 ㅎㅎ).
벌초의 기계화로 인한 폐해도 크다. 공동묘지가 풀베기 작업장이 되어 버린 듯,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매캐한 연기와 무참히 갈려버린 풀과 기름냄새만이 진동할 뿐이다. 마치 누가 먼저 작업을 마치고 절하는 것을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벌초를 하는 행위가 탈주술화 되고 있는 것일까?
참고문헌
※ 참고문헌
이상철, 2003, “제주 지역사회의 구조와 변동”, 『제주지역 민간신앙의 구조와 변용』, 백산서당.
조성윤, 2005, “제주도에 들어온 일본종교와 재일교포의 역할”, 『탐라문화』제27집,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하순애, 2003, “제주도 민간신앙의 구조와 변화상”, 『제주지역 민간신앙의 구조와 변용』, 백산서당.
현혜경, 1999, “제주 농촌마을의 기제사 의례변화”, 『제주도연구』, 16집. 제주학회.
기든스, 앤서니, 1996, 김미숙 외 옮김, 『(개정판)현대사회학』, 을유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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