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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관점에서 제주도 현대사를 읽는다 역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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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또 다른 관점에서 제주도 현대사를 읽는다 역사보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또 다른 관점에서 역사보기
나는 지금까지 나름 생각 있게 역사를 보고 박물관을 보고 미술을 보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 ‘제주도 현대사를 읽는다’ 답사는 내 생각을 산산조각 낸 그러한 답사였다. 내가 얼마나 우리 역사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나 역시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정해준 비슷비슷한 역사관에 끌려가는 사람일 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답사라는 것을 처음 가보았다. 언론홍보학과에서 방송국에 가서 수업을 한다거나 정실 비행장에서 기사를 쓰는 등 현장에서 수업을 한 적은 있었으나 실제로 하루 동안 버스를 타고 다니며 이곳저곳 다니는 것은 처음이었다. 초등학교 때 현장학습 같은 기분이 들어 조금 설레기도 하였다. 여하튼 집결지인 관덕정에 가보니 교수님을 중심으로 학우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고 ‘아 답사가 이런 식으로 진행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지난번 제주대 박물관에서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며 다니는 식으로 말이다. 관덕정에 앉아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듣고 본격적으로 내부로 들어가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니 과거 역사 다큐멘터리라도 보는 기분이었다. 관덕정의 과거 이야기를 들으며 옛날 모습도 상상해보니 굳이 강의실에서 배워도 되는 이야기를 답사까지 가면서 듣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관덕정 발굴과 복원 과정에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들으며 단지 보여주기 식의 행정을 펼치는 도청에 대해서 실망하기도 하였다. 관덕정의 주춧돌을 발굴하다 탐라시대의 건물까지도 복원할 수 있었으나 도청에서 그것을 무시하고 그대로 관덕정 복원을 진행하였다는 것은 제주도의 역사 유적들이 중앙정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관덕정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간 곳은 항몽유적지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자주 가던 곳이라 어떤 구조인지는 다 알고 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들은 이야기는 살면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평소 교수님이 강조하시던 진짜 ‘제주’로서의 관점으로 항몽유적지를 보니 새로운 이야기가 들리고 못 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런 새로운 관점은 고려 중앙정부의 관리가 거의 닿지 않는 외진 제주에서 갑자기 삼별초 군이 내려오고 그들을 위해서 양식, 노동을 제공한 제주도민들은 어땠을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앞서 관덕정에서도 보았듯이 지금은 중앙정부의 힘이 크고 영향력도 전국으로 쉽게 퍼져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중앙정부의 힘이 제주도까지 크게 미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치고 있다 하더라도 제주도는 중앙정부 입장에서 크게 중요한 곳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중앙정부에서 내려온 군사들이 제주도를 점령하고 전쟁을 시작하였다. 그것도 여몽연합군을 상대로 말이다. 제주도민들은 얼마나 어처구니없었을까.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네 땅에서 싸우기 시작하고 갑자기 일을 시키니 말이다. 하지만 항몽유적지에서 본 당시 제주도민은 삼별초에 환호하고 몽골에게 착취당하는 그러한 모습이었다. 과연 그 그림이 제주도민과 닮았을까. 문서가 남아있지 않기에 당시 모습을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한번 다른 쪽으로도 생각해보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그 다음에 찾아간 곳은 사라봉에 있는 모충사였다. 모충사에는 총 3개의 기념탑이 서 있었다. 김만덕 기념탑, 제주의병항쟁 기념탑, 순국지사 조봉호 기념탑이 서있었다. 듣기만 해도 제주를 대표하는 기념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언가 조합이 들어맞지는 않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의병항쟁과 순국지사는 항일 운동이라고 하여도 김만덕은 시대적으로 맞지가 않았다. 단지 제주도를 대표하는 위인들을 모아놓은 곳이라고 하기는 부적합한 면이 있었다. 이러한 의문은 교수님의 설명으로 간단히 해결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제주도에서도 애국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사업을 하고 중앙정부에 대해서 충성을 보여야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곳이 모충사라는 것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 하에 있던 우리나라이었기에 도에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은 알겠지만 이건 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에 인물이 그리도 없던가. 항일, 빈민 구제 등 국가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고 이슈가 될 수 있는 사건, 인물들 위주로 너무 기념탑을 세운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다면 정말 제주도의 입장에서 기념탑을 세운다면 어떤 인물, 사건을 가지고 세울 수 있을까? 그것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아마 내가 탑을 세운다면 제주도민들의 생활상으로 탑을 세우고 싶다. 제주도의 진짜 주인은 제주도민이지 중앙정부, 나라에 헌신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라봉을 내려가는 길에 과거 일제시대, 4.3 때 이용되었던 굴이 있는 곳을 지나게 되었다. 그 굴을 판 목적, 그리고 실제로 사용한 사람들, 결국은 모두 몰살당했지만 내가 밟고 있는 땅이 과거에는 피바다이었다는 것에는 살짝 소름이 돋기도 하였다. 그 굴마저도 주민의 제보가 없었으면 평생 묻혀있을 뻔 했다. 굴에 대한 제보를 받아 발굴한 것이 2007년이니 아직 5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4.3 사건이 일어난 지 어느덧 50년이라는 세월이 더 지나갔으나 아직도 우리는 4.3에 대해서 모두 알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사라봉을 내려가니 사라진 마을 곤을동에 도착하였다. 곤을동은 4.3 사건 당시 총성을 들을 군인들이 총을 쏜 사람을 찾기 위해 마을을 전소시키고 마을 사람들을 죽인 참으로 한이 서린 마을이다. 지금도 곤을동을 보면 집터가 그대로 남아있고 마을의 올레가 그대로 남아있다. 다른 서귀포 지역에 있는 무등이왓이나 다른 사라진 마을들에 비하면 그 규모는 조금 작을지 몰라도 충분히 그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여름에 UCC를 만들기 위하여 4.3의 흔적들을 찾아서 제주도 전역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가시리, 무등이왓 등 과거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았다. 고작 담이 남아있고 흔적이 전부인데 이러한 점은 아쉽다. 그러한 곳도 지금 밭으로 이용된다고는 하지만 잘 이용한다면 4.3의 흔적을 복원하고 새로운 교육의 장으로 만들 수 있는 좋은 시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다음에 간 곳은 항일기념관이었다. 항일기념관에서는 과거 일제시대의 항일 운동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밀랍인형을 만들어 당시 고문 장면을 재현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쓰이던 총, 문서 등을 전시하였다. 1층은 리모델링 중이여서 보지는 못하였지만 2층만으로도 어떠한 전시를 하고 어떤 내용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짧은 느낌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항일 기념관은 앞서 살펴본 다른 유적지들과는 다르게 기본적인 내용에 충실해 있었다고 생각이 된다. 항일기념관이 위치한 곳은 조천읍이다. 제주시도 아닌 조천읍에 왜 이러한 기념관이 생겼는지는 다른 배경이 있었다. 이 지역 세력가였던 김해 김씨 집안에서의 영향력 때문에 조천읍에 기념관이 생겼다는 것인데 새삼 그 지역 유지의 힘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지역의 유지가 누구이냐에 따라서 그 지역의 소득이 달라지고 시설이 달라진다는 교수님의 짧은 말씀이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간 곳은 해녀 박물관이었다. 이곳도 작년에 해녀 축제가 있어서 갔다 온 곳이었는데 그 때의 북적북적한 분위기는 없고 한산한 분위기가 느껴서 신선했다. 제일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스피커를 통하여 해녀 노래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다른 곳에서는 본 적 없는 그러한 시설이었다. 관광객들이 온다면 신기해하고 조금 해녀에 대해서도 알아갈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해녀 박물관은 앞서 본 항일기념관과 다르게 규모가 상당히 컸다. 규모가 큰 만큼 전시된 물건들이 많고 볼거리도 많았다. 하지만 사실 쭉 둘러보다보니 해녀 문화를 소개한다기 보다는 해녀가 사용하였던 물건들, 해녀가 채취하는 해산물 등 그러한 것들만 전시하기 급급했다. 규모도 크고 전시할 내용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공간이지만 그러한 곳을 살리지 못하고 단지 보여주기 식의 전시는 아쉬울 뿐이었다. 또 해녀가 너무 미화 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관람을 시작하기 전 교수님이 해녀 동상을 보고 하신 말씀이 해녀가 너무 미화 되어 있고 젊게 그려져 있다고 하였다. 해녀가 하나의 관광 상품화 되어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진짜 해녀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밭일, 물질 모두 하면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그러한 여성들인데 이제는 그저 하나의 눈요기가 되어버린 지금 상황이 어쩔 수 없는 해녀의 살아갈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번 답사를 통하여 배운 것 중 가장 커다란 것은 역사의 다시 보기이다. 단지 전시되어 있는 것 뿐 만이 아닌 그것을 한층 더 깊게 생각하여보고 다른 측면으로 바라볼 때 그 전시가 정말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알고 있는 지식이 많아야 하고 자신만의 주관이 있어야하며 주위의 도움 역시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고 이번 답사에서는 나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과 제주도 관광지, 역사 유물 등 제주도의 관리의 아쉬움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