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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텡 게르의 귀향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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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마르텡 게르의 귀향을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교대 도서관까지 가서 책을 빌렸지만, 리포트 마감이 임박할 때까지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 핑계 저 핑계로 책 읽는 것을 미루다가 지난 주에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영화를 보고 읽을 마음이 생겼다. 영화가 생각보다 재밌었다. 부부 사이에 은밀한 문제가 마을 사람들 모두의 화제거리로 오르내리고 마르탱의 ‘성불능’ 문제를 치유하고자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의식을 치르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생각보다 흥미진진한 내용전개에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꺼내들 수 있었다.
이 책은 재판기록을 토대로 구성된 이야기를 통해 16세기 프랑스 농촌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게르 가족에게 벌어진 이 황당한 사건에는 단순히 해당 인물들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시대의 농촌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도 함께 기여했다.
중심인물인 마르탱 게르는 언뜻 보기에 주변사람들에게 폐만 끼치는 ‘구제불능’으로 보인다. 일단 마르탱은 아내인 베르트랑드에게 좋은 남편이 아니었다. 출산과 직결된 부부관계가 마르탱의 ‘성불능’ 때문에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의 마르탱을 두고 마법에 걸렸다고 말한다. 게르 집안과 롤스 집안의 결합을 시샘하는 마녀의 마법에 묶여 있어 결혼을 완성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과거 일부 나라에서 ‘불임’의 문제를 온전히 여성의 탓으로 돌려 죄인으로 몰아갔던 것을 떠올리면 어쩌면 이 정도는 약과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성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를 출산에 두었던 당시를 생각하면 베르트랑드의 어깨가 꽤나 무겁고 힘겨웠을 것이다.
신체적인 문제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마르탱은 그 외의 영역에 있어어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 마르탱은 농촌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농사짓는 일을 소홀히 한다. 칼싸움과 곡예 따위를 제외하고 마르탱의 관심을 끄는 것은 없었다. 마르탱은 기장밭, 기와공장, 소유지, 결혼 너머의 생활을 꿈꿨으며 가족생활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곡식을 훔친 그날 실제로 가족을 버리고 마을을 떠난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리고 농촌사회에 한 일원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마르탱은 누가 봐도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인간처럼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타고난 마르탱의 본성의 문제 때문일까. 흥미와 재능에 따라 직업을 선택할 수 없었던 당시 사회에서 마르탱에게 태어나자마자 농부로서의 삶이 주어졌다. 본인이 선택하지도 않는 일을 떠맡은 마르탱이 농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마르탱의 ‘성 불능’ 문제도 비슷하다. 마을 사람들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미성숙한 소년에게 조혼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 어린 소년이 혼인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이루지 못하자 가족과 마을사람들은 마르탱을 냉혹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애에게 애를 낳으라고 한 꼴이다. 마녀의 저주를 푼다고 의식을 치르는 등 별 짓을 다한 결과 마침내 마르탱과 베르트랑드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 가족과 마을사람들이 부부사이의 은밀한 문제에 사사건건 관여하고 끊임없이 출산을 재촉한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낳았지만 그 과정에서 마르탱이 느꼈을 수치심은 짐작할만 하다. 이러니 마르탱이 부부관계에 있어 혐오 또는 두려움을 느꼈던 것 또한 이해가 간다. 그러나 사회는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농사와 자손 번식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가장의 당연하고도 불가피한 의무였다. 마르탱이 도망친 것은 단지 이 모든 억압을 참고 평생을 살아갈 인내심이 부족했을 뿐이다. 여성 못지않게 남성 또한 가부장제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르탱 게르가 떠나고 베르트랑드는 8년간 정조를 지키면서 남편을 기다린다. 하지만 8년간 정조를 지킨 것이 마르탱을 사랑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당시 교회법에 의하면 남편이 부재한 경우 그가 죽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한 그 아내는 자유롭게 재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베르트랑드는 도도한 자의식을 지니고 있었고 사회의 평판을 의식하는 여성이었다. 오랜 기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죽었다고 위장해 재혼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대신 ‘정조를 지키며 정숙하게’ 살았다는 평판을 얻는 길을 선택했다. 그러던 중 자신이 마르탱 게르라고 주장하는 남자가 마을로 찾아온다. 마르탱 게르가 아니고는 알 수 없는 세세한 것까지 모두 기억하는 이 남자를 모두가 진짜 마르탱 게르라고 믿는다. 하지만 ‘아내에 대한 남편의 손길‘을 착각할 수는 없다. 베르트랑드는 그가 자신의 남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새로운 마르탱 게르는 과거 진짜 마르탱이 주지 못했던 성적인 만족감을 제공하고 뛰어난 농사솜씨로 배가 되는 수확량을 거둬드린다. 여러 면에서 전 남편보다 났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베르트랑드는 ’가짜 마르탱‘은 ’진짜 마르탱‘으로 위장하기로 결심한다. 위장에 성공한다면 베르트랑드는 정조를 지키는 정숙한 여인이라는 평판과 함께 자신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주는 사랑하는 남편 또한 얻을 수 있었다. 베르트랑드가 이 두 가지를 모두 원한 것은 욕심이 아니다. 사회에서 받는 호의적인 이미지, 사랑하는 남편은 충분히 함께 누릴 수 있는 기쁨이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첫 단추를 잘못 꿴 베르트랑드에게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남편의 죽음이 증명되지 않으면 재혼을 허락하지 않는 교회법이 그러했고, 재혼이 허용된다 하더라도 여성에게 정조를 지킬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사회 풍조가 그러했다. 베르트랑드의 이런 욕심 아닌 욕심은 사건을 점점 더 키운다.
강력한 가톨릭 사회에서 이들은 어떻게 이런 대담한 거짓말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당시 가톨릭 사회였던 프랑스에서는 개신교가 확산되고 있었다. 강력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개신교는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마르탱과 베르트랑드는 개신교 신자가 되었고 개신교의 메시지는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가톨릭에서는 자신의 죄를 신부라는 중개자에게 고백하는 고해성사를 해야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오직 신에게만 할 수 있고 어떤 인간 중개자에게도 알릴 필요가 없었다. 또한 1545년 이후 신교 도시 제네바에서 제정된 새로운 혼인법에 따르면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내는 “남편에게 원인을 제공하거나 결코 죄를 범한 경우가 아니라면” 1년간의 조사가 끝난 후 장로 회의로부터 이혼하고 재혼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자신을 속이고 세상을 속인다는 죄책감이 그들에게도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개신교는 대담한 거짓말을 지속시킨 면죄부로 작용했다.
사실, 시간에 쫓겨 책을 급하게 읽어 내용파악이 완벽하게 안 된것도 있고 역사에 무지하기 때문에 놓친 부분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상상력에 의존한 소설이 아닌 실제 재판기록을 바탕으로 한 역사서로서 농촌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을 그려낸 책을 처음 읽어본다. 역사라는 것이 공식적인 기록뿐만이 아니라 재판기록같은 생각지도 못한 자료에서도 추출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사 수업이 아니었으면 아마 읽어보지 못했을 책 같다. 좋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