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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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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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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마르탱 게르의 귀향’을 읽고
처음 과제를 접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헤맸다. 사회사 강의 과제이기에 당연히 사회과학파트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곳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문학파트에 있었다. 그래서 의아하게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왜 문학파트에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책은 16세기 프랑스의 한 지방에서 있었던 사건재판을 담당했던 판사가 그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역사적으로 기록한 것을 여러 작가들이 문헌을 통해 해당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에 문학파트에 있었던 것이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라고들 말한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 역시 다르지 않다. 16세기 프랑스 시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층의 사건을 해당 당사자가 아닌 지배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는 판사 작가들이 기록한 것이다.
당시의 시대상황을 보면 농민층들의 문맹율이 높아 문헌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인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어쩌면 지배계층에 의해 무지할 것을 강요받았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교육 대신 농사기술을 가르치거나 전쟁터에 내보내서 전투에 참여시켰기 때문에 글을 알지 못하고, 문헌을 남길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들에 의해서 당사자들이 기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각색, 과장이 있다는 것을 유념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본다면 충분히 역사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이러한 가치에 바탕을 두고 책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한 후 필자가 발견한 16세기 프랑스사회의 두드러진 사회모습을 21세기 대한민국 사회모습과 비교하여 사회사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고 공통점이 있는지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회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주인공 마르탱 게르는 조혼을 통해 베르트랑드와 결혼을 하지만, 당시 사회의 지배적인 관습에 따라 농민으로서 농사를 짓고, 교회법에 따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성관계를 강요받고, 이를 통해 아이를 가질 것을 요구받고, 농경사회로 인한 대가족 생활, 이외에 다양한 관습이나 부모님에 의한 행동에 제약을 받아 이에 대한 부담을 회피할 대책을 강구하였고 그 대책으로 가족을 버리고 도망을 감행한다.
이후 베르트랑드는 자신만의 성격(여성으로서의 평판에 대한 관심, 확고한 독립심, 16세기 사회현실에 대한 감각)과 당시의 관습(남편 부재 시 사망증거 없는 경우 자유재혼 불가하며 이를 어길시 교회사회에서의 제재 우려) 등 자의반 타의반으로 남편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살다가 가짜 마르탱이 나타나 혼인생활을 이어나간다.
이후 돌아온 마르탱이 진짜 마르탱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챈다. 하지만 변함없이 혼인 생활을 이어나간다. 나중에 가짜 마르탱과 혼인생활을 이어갔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되고, 재판 도중 진짜 마르탱이 나타나 재판으로 인한 마을과 가족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내부 구성원들이 다시 단결하는 계기가 된다. 재판이 끝난 뒤 해당사건을 담당했단 판사 코카스가 사건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출간하고, 이후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가치관을 토대로 해석하거나 책을 출간한다.
당시 판사들은 엘리트층으로서 화려한 저택과 영지를 소유하고, 귀족작위를 취득했다. 이렇게 자신(코카스)이 지배계층으로써 당시 사회를 주도해 나간다고 생각하였는데, 피지배층인 농민에게 속아 아르노가 진짜 마르탱이라고 인정하는 판결을 하는 상황 직전까지 갔다가 후에 진짜 마르탱이 나타나 그 상황을 모면했다는 사실이 어쩌면 수치스러웠을 것 같다. 이런 부분들은 코카스의 삶을 설명하는 글에서 드러난다.
그는 마르탱의 관한 글을 남기기전 코카스 자신의 ‘전기’를 남겼는데, 열세 살에 민법을 해석했고, 이후에 파리, 앙제 등에서 민법과 교회법을 공부했는데 종종 강의요청을 받기도 했으며, 툴루즈로 돌아와 대학에서 민법을 강의하며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