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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감상 - 완죤히 새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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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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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완죤히 새됐어
우리나라에는 선조들이 남겨주신 삶의 교훈이 묻어나는 속담이 많다. 이렇게 많은 속담 중에서도 우리는 ‘곧은 나무가 먼저 찍힌다.’라는 속담을 종종 사용하곤 한다. 이 속담의 뜻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이 속담은 어느 상황에서나 거의 들어맞는다. 내가 본 ‘완죤히 새됐어!!!’라는 연극은 그 속담이 정확히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다. 바로 이 교수에게 말이다.
누구도 인간의 종류를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물론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내 자신조차 어떤 인간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렴풋이 이렇게 인간을 나누어 볼 수도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진심을 지니고 사는 인간과 진심이 결핍된 인간. 즉, 진심에 따라서 사람들을 구별하는 것은 어떨까.
만약 이런 방식으로 인간을 구별해 본다면 극중 이 교수는 진심을 가진 인간이라고 생각된다. 잠시만 이 교수의 행동을 살펴보더라도 학교를 위한 진심, 후배를 아끼는 진심, 아내를 사랑하는 진심 등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게 가장 큰 힘은 진심어린 사람의 마음이고,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풀어줄 수 있는 힘도 진심어린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어린 애절한 노래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이것은 또한 연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진심어린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나 역시 그 연기에 동화되어 녹아내린다. 이들 모두는 진심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진심을 항상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이 교수는 진심을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인은 그 진심을 알아주지 못했다. 제자들도, 모든 사람들도 이 세상도 이 교수의 진심을 몰라주었다.
역시 진심을 알아차리는 것이란 어려운 일인가보다. 우리의 눈은 진심만 구별되어 보이는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우리의 귀역시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진심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이 세상을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진심을 알아차리지 못할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슬픔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스쳐간다.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 조물주께서는 모든 동물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새에게는 자유로이 날 수 있는 날개를, 토끼에게는 누구보다 잘 들을 수 있는 귀를, 호랑이에게는 날카로운 손톱과 이빨을. 하지만 인간에게 돌아올 선물은 없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생각’이라는 것이 있었다. 생각을 통해서 이만큼 기술과 문명이 발전했고, 풍족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남을 의심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못된 속셈을 펼칠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약하기만 하던 인간은 서로를 도와서 잘 살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남위에 올라설 수 있을까 생각을 한다. 분명 지금 누군가는 또 이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안타깝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극중 실장은 생각이 많은 사람이다. 처음에 실장은 이 교수를 회유하지만 곧 내쫓을 속셈을 펼칠 생각을 해서 이 교수를 벼랑 끝으로 내몰게 된다. 생각 많은 실장의 행동은 옳지 않은 것이지만 그의 생각은 그나마 이해가 된다. 물론, 마음이 아닌 머리로만.
하지만 절친한 후배였던 장은정은 도무지 나의 마음뿐만 아니라 머리로도 이해하기 힘들다. 아니, 이해하려 들고 싶지도 않다.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알고 지내던, 아니 알고지낸 것뿐만 아니라 절친했고 믿고 아끼던 선배를 한순간에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에 제일 앞장설 수가 있는 것일까? 그렇게 얻은 교수라는 지위가 과연 그녀에게 주는 것은 무엇일까. 돈? 명예?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돈, 명예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이 돈, 명예일까? 이것역시 사람의 기준마다 다르겠지만, 이것은 분명하다. 그렇게 원하던 교수자리를 얻은 장은정도 마음만은 편치 않을 것이다. 물론 편한 척 할 수야 있겠지만 말이다. 실장과 같이 검은 마음을 지닌 자에게 간이며 쓸개, 자존심을 따 빼다 바쳤지만 언젠가는 이 교수처럼 벼랑 끝으로 몰려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그녀를 괴롭힐 것이다. 그녀는 이 교수보다 더 비참하겠지. 이 교수는 적어도 검은 마음 실장에게 간, 쓸개, 자존심을 팔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장은정 말고도 불쌍한 여인이 또 등장한다. 바로 이 교수의 부인이다. 이 교수의 부인 역시 이 교수의 진심을 믿지 못했지만, 그것은 어쩌면 부인이 이 교수를 향한 믿음과 사랑이 그 누구보다 너무 컸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믿음과 사랑이 크면 실망과 증오도 큰 법. 너무나 충격적인 남편의 소식 때문에 그녀의 마음은 단단히 자물쇠가 채워진 철문처럼 굳게 닫혀 버렸을 것이다. 그녀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간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 이제껏 믿고 살아왔던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다면 비록 진실 된 이야기라도 어떤 이야기가 귀에 들리겠는가. 이 교수의 진심이 부인의 그 잠긴 철문을 열어보려 노력했지만 아쉽게도 역부족이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사람의 진심을 알아차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 한 번 느끼게 되어 씁쓸하다.
세상에는 하루에도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 많은 사건이 일어난다. 내가 그 사건들의 주인공이 되는 일이 매우 드물다. 나는 제 3자일뿐이다. 박동현과 박현주 역시 제 3자 들이다. 그들은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고, 내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제 3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일이 아니면 그냥 들은 대로 믿어 버리고는 한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마음 다른 것이 사람 아닌가. 자신의 일도 그러한데 하물며 남의 일이야 오죽 하겠는가. 내 일이 아니니까, 그냥 “그 사람이 왜 그랬지?”라며 넘어가기 일쑤이다. 그리고는 너무 쉽게 기억을 잊어버린다. 사람들은 그 사건을 잘 기억하지도 못하고 그냥 ‘그런 일이 있었지.’ 라는 정도로 넘어가버린다. 자기 자신이 그 같은 일을 당하게 되는 그 순간, 그 힘든 마음을 알게 된다.
이 연극에서는 자기가 맡은 일에 묵묵히 해가는 인물도 있었다. 보통 자기가 맡은 일을 묵묵히 해가는 이들은 긍정적이고 좋은 이미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이미지이다. 하지만 자기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직원 1, 2는 자기 일을 열심히 한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결과는 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망쳐버릴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분명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이 나쁜 것인가, 악한 것인가 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작은 입에 풀칠하기 위해서 그 같은 일을 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남의 아픔 따위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니 모르는 척 해버리는 바보천치가 되어버리는 이들이다.
촌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는 연극 관람이 처음이다.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르겠고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우선 처음 눈에 들어오는 인물들에 대하여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이 연극에는 이 교수, 실장, 장은정, 이 교수의 부인, 박동현과 김현주, 직원 1, 2가 나온다. 이들을 앞에서 말했던 나의 기준에 맞춰서 본다면, 진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진심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 진심을 회피해버리는 사람, 진심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 진심에 무관심한사람, 진심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연극에서는 불행히도 진심이 세상에 묻혀 사라져버렸다. 만약 하늘에 신이 계신다면, 등을 돌린 세상과 아내, 제자들이 알지 못한 이 교수의 진심을 하늘은 알아주셨을까?
경직된 진실, 유연한 위선. 정말 세상의 속박에 의해 경직되어 버린 진실은, 요리조리 유연한 위선에 밀려버린 것만 같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수없이 많은 또 다른 진실들이, 내가 진실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던 거짓과 위선들이 존재하며 지금도 나에게 조소를 날리고 있겠지.
나는 생각할 수 있는 머리도 있고 진심을 느낄 수 있는 마음도 있다. 머리와 마음, 두 곳 모두 상대의 진심을 알아차리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왜 진심을 알아차리기 위한 것이 두 군대나 있으면서도 상대의 진심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나뿐만이 아니다. 극 중에 나왔던 이 교수의 부인과 학생들도 아니, 모든 사람들도 어쩌면 유연한 위선에 속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들 속고 속이며 살아가고 있다. ‘지뢰 찾기’라는 게임이 있다. 지뢰는 게임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유연한 위선이라는 지뢰밭을 걸어가며 살아간다. 그 진실은 언제 터져 세상으로 진실을 말해주러 나올지 모른다. 또한 영원히 터지지 않을 수도 있다. 저 멀리에, 한 발짝 앞에 아니, 어쩌면 지금 밟고 있어서 발을 떼면 지뢰가 ‘뻥’하고 세상 밖으로 경직된 진실을 말해주러 터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오늘도 경직된 진실이라는 지뢰를 찾으러 여기저기 열심히 발로 두드려본다.
이 연극을 통해서 나는 인간의 진실된 마음과 여러 형태의 마음을 지닌 인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세상에는 밝은 곳이 있으면 어두운 곳도 있고 슬픈 일이 있으면 언젠가는 기쁜 일도 찾아온다. 인생살이 ‘새옹지마’가 아닌가. 이처럼 세상에는 진실된 진심 저 넘어 에는 거짓된 위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연극이었다. 또한 여러 형태의 마음을 지닌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기도 했다.
연극은 진심을 외면당한 이 교수의 울부짖음으로 끝난다. 세상에는 내가 몰라줘서 저런 울부짖음을 누군가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진심이라는 것은 유리공과 같다. 너무 약해서 깨지기 쉬워 소중히 다뤄야한다. 그것은 너무나 투명해서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진실은 이렇게 깨지기 쉬워 영원히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너무나 맑고 투명해서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알아차리기도 전하기도 힘든 진심을 더욱 소중히 마음으로 품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무엇보다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바로 진심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