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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 주의 나 교육 공리주의의 이론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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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공리 주의 나 교육 공리주의의 이론적 배경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공리주의는 쾌락주의에서 발전한 이론으로서, 사회적 쾌락주의라고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쾌락주의자이다. 나는 나에게 효용이 되는 것은 웬만하면 지키려고 하지만, 나에게 효용이 없는 것은 절대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래서 밀과 밴담의 쾌락주의에 대하여 수업을 들을 때 많은 부분에 공감을 하고, 또 감탄하기도 했다. 이러한 연유로 공리주의에 대해 다른 이론들 보다 애착도 가고 관심도 가기에, 레포트의 주제를 공리주의로 잡았다.
Ⅱ. 본론
1. 공리주의의 이론적 배경
공리주의(功利主義)는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친 영국의 윤리적 사상이다. 인간 행위의 윤리적 기초를 개인의 이익과 쾌락의 추구에 두고, 무엇이 이익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행복이라고 하며, 도덕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한다. 이 사상은 근대 시민사회의 윤리적 기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영국 고전경제학의 사상적 기초와 자본주의 질서 구축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공리주의의 제1원리인 개개인의 사익추구가 공익의 보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배치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벤담(1748년 - 1832년), 존 스튜어트 밀(1806년 - 1873년) 등이 대표적 공리주의자들이다.
2.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벤담의 공리주의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이 표어는 일반의 견해와는 달리, 그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확실하게 밝혀주는 일치된 학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흔히 이 말을 모든 사람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서 무조건적으로 경도되는 경향이 있는데, 전문단계에서는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벤담은 철저한 양적 공리주의자다. 쾌락을 수량화할 수 있고 측정 가능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일반적 효용과 쾌락은 그렇다 하더라도 개별적 쾌락이 수량화 된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람마다 쾌락의 내용과 양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모순으로 인해 이 명제는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벤담의 관심은 행복과 쾌락의 총량이지 이의 합리적 분배나 평등이 아니었다. 모든 사람의 행복의 보장이 공리주의의 목적이라면 평등을 추구한다는 뜻이 되고 이는 사회주의와 직결된다. 벤담은 사회주의자이기는커녕 그 대척점에 있는 자유방임적 보수주의자다. 따라서 이 명제는 말 그대로 최대다중이 아니라 최대수량을 중시한 분배가 아닌 총량의 성장주의를 뒷받침하는 언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만인을 공히 행복하게 하는 것은 구호로 될 일이 아니다. 2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성장만이 만인의 행복, 즉 평등을 보장한다면서 똑같은 논리로 대중조작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공리주의에 대한 오래된 곡해 탓일 수 있겠다.
또한, 벤담의 최대다수를 만인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 만인이 누구인지를 캐봐야 한다. 오늘날 만인을 뜻하는 시민은 고대에서는 대다수 노예를 뺀 소수의 자유민을 뜻했고 근대의 시민도 소수의 부르주아를 뜻했다. 벤담이 말하는 대다수도 대중이 아니고 귀족에 비해서만 다수인, 사실상의 소수 부르주아, 부자시민일 뿐이다. 벤담 시대의 대다수 노동자 농민은 주권도 없었는데, 이런 처지에서 벤담의 배려대상이 되고 행복을 보장 받았을 리 만무한 것이다. 한편, 이 명언을 벤담이 직접 창안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벤담 스스로가 이탈리아 법철학자인 베카리아로부터 차용했다고 밝혔고 똑같은 내용의 문구가 다른 여러 문헌에서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밀이 제시한 명제도 유명하다."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 배고픈 인간이 되는 편이 낫고, 만족해하는 바보가 되기보다 불만족스러운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낫다"- 이를 놓고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교육과정에서는 정신적 쾌락을 예찬한 것으로 미화되고 있지만 큰 오해일 수 있다.벤담과 마찬가지로 밀도 철저한 공리(Utility)주의자다. 공리주의는 물질적 성장을 제일원리로 하는 자본주의의 철학적 골격이고 바탕이다. 그러니 물질적 쾌락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이 명제의 앞 구절에 나오는 다음의 문장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짐승이 누리는 쾌락을 마음껏 누리게 해준다고 해서 짐승이 되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설령 바보, 멍청이가 다른 사람보다 자신의 팔자에 더 만족을 느낀다고 아무리 그럴듯한 설득을 하더라도 지성을 갖춘 사람이 바보가 되고 교양 있는 사람이 저급한 자가 되려하지는 않을 것이다..."이처럼 밀은 정신적 가치와 쾌락을 우선하고 중시한 것이 아니라 물질적 쾌락에 매몰되어 타락하고 위기로 치닫는 자본주의 사회에 백신을 놓는 차원에서 정신적 쾌락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설했지 자본주의의 요체인 물질적 욕망구조를 해체하거나 훼손한 것이 아니었다. 밀은 벤담과 보완관계의 공리주의자로 보수주의자로부터는 숭앙을 받지만 진보주의자들로 부터는 비판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3. 공리주의 비판
삶에 있어 옳고 그름 즉, 선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명쾌하게 풀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나 원리가 있는가를 두고, 수많은 철학자들은 줄곧 골머리를 앓아 왔고 지금도 계속해서 뜨겁게 논쟁중이다. 그런데 대담하게도 공리주의는 도덕의 최고원리에 대해 하나의 기준을 제창했다. 공리주의는 행복과 쾌락만을 윤리의 원리로 삼는다. 일면 타당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깊이 분석해볼 때 그 한계가 금세 드러나고 만다. 행복이 무엇이냐는 것부터가 철학적으로 아직 정답이 없는 오랜 난제다. 물론 공리주의는 그것이 쾌락이라고 단언하지만 쾌락을 정의하는 것도 간단치 않다. 아니 정의가 거의 불가능하다. 쾌락은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고통이 없는 상태를 쾌락이라고 정의하지만, 그럴수록 미궁으로 빠져든다. 고통이 없는 진정한 쾌락이란 없을뿐더러 고통을 통과할 때라야 오히려 쾌락이 배가될 수 있다. 그런데도 쾌락을 유일한 도덕의 기초로 삼은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납득할만한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고 있으니 스스로 경험, 과학주의적 도덕을 배반하고 보편 윤리에 반하는 모순을 빚을 뿐이다. 공리주의의 쾌락이 수반적으로 윤리의 한 척도는 될 수 있을지라도 결코 선악을 판단하는 하나의 최고 원리나 잣대는 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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