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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비즈니스의 이해]- 유러피언 드림 -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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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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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유러피언 드림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의 차이점을 비교하며 전개하는 내용은 꽤나 흥미로웠다. 특히나 기독교 문화에서 자란 나에게는 미국인의 사고방식이 쉽게 이해가 되었다. 우리 부모님의 경우에도 ‘선민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 한민족이 선택받은 족속이라고 믿는다. 책의 중간마다 나온 성경책의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미국인과 유럽인들의 사고가 이렇게나 다른지 몰랐고,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메리칸 드림은 경제 성장, 개인의 부, 독립을 중시하지만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지속 가능한 개발, 삶의 질, 상호 의존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아메리칸 드림이 근로 윤리를 높이 사는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여가 활동과 “심오한 놀이(deep play)”를 선호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의 종교 전통 및 굳건한 신앙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철저히 종교와 분리되어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동화주의를 표방한다. 미국인들은 이전의 문화 관계를 탈피하고 미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서 자주적 행위자(free agent)가 돼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유러피언 드림은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고 다문화 세계를 수용하는 데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애국주의에 집착하는 반면 유러피언 드림은 세계주의적인 색채가 강하다. 미국인들은 중요한 국익으로 인식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세계 어디든 병력을 파견하려 한다. 유럽인들은 군사력 사용을 꺼리며, 주로 외교와 경제 원조를 통해 분쟁을 피하려 하고, 치안 확립보다는 평화 유지 작전을 선호한다. 미국인들은 대개 자기 나라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유럽에는 자기 나라만 생각하는 사람들에서부터 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까지 매우 다양한 부류가 뒤섞여 있다. 아메리칸 드림은 철저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의 복리에 관심이 거의 없다. 그러나 유러피언 드림은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지구 전체의 복리를 좀 더 중시하게 된다.』(24쪽, 25쪽)
『미국인들은 일을 함으로써 행복을 구한다. 반면 유럽인들은 존재함으로써 행복을 구한다. 미국인들에게 행복이란 개인적 성취, 물질적 성공과 결부되어 있다. 반면 유럽인들에게 행복은 서로간의 돈독한 관계 및 공동체 유대감과 결부되어 있다. 나의 유럽인 친구들은 긴밀한 대인 관계와 결속감이 형성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말했다.』(155쪽) 『유럽인들은 일하기 위해 살기보다는 살기 위해 일한다. 물론 그들의 삶에서도 일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일만으로는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데 미흡하다. 유럽인들은 직업 경력보다 심오한 놀이, 사회적 자본, 사회적 결집을 중시한다.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묻는 조사에서 유럽인의 95퍼센트는 다른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92퍼센트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가치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고, 84퍼센트는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응답했으며, 79퍼센트는 개인의 발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고, 49퍼센트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이 조사에서 제시된 여덟 가지 가치 가운데 금전적 성공이 꼴찌를 차지한 것이다.』(494쪽)
일을 함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는 미국인들의 삶보다 존재함으로써 행복을 구하는 유럽인들의 삶이 좀 더 아름답게 보인다.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일하기 위해 사는 삶이 되어 버린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보면, 유럽인들의 가치관과 삶의 모습은 참으로 부럽다.
『미국인들은 겉보기에 상반되는 두 가지 영역에서 동시에 생활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하나는 존 윈스럽이 설파한 종교적 열의와 영구 구원에 대한 믿음이 특징이고, 다른 하나는 벤저민 프랭클린이 강조한 실용적 세속주의, 합리적 행동, 물질적 발전에 대한 믿음이 특징이다. 개혁신학과 계몽주의 철학이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은 둘 다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 신학자들은 교황의 권위를 비난하고, 성직자들도 다른 모든 인간처럼 불완전하기 때문에 신성한 중재자가 될 수 없다고 기독교인들을 훈계했다.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 그리고 그들의 후계자들은 교회의 교리 해석이 일반 교인들의 해석보다 더 높은 권위를 갖지 않으며, 교인과 하나님의 관계는 궁극적으로 개인적인 경험이라고 주장했다. 종교 개혁은 교회의 권위를 깎아내리고 일반 교인들의 지위를 치켜 올려 같은 수준에 맞추려 했다. 반면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개인의 지위를 끌어올린 것은 인간의 합리적 행동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아무튼 자율적 개인의 지위는 오늘날까지 그대로 유지되어 양대 역사적 흐름 사이의 연결 고리가 되고 있다.』(171쪽, 172쪽)
현재 교회를 다니고 있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나로서는 교회의 모습에 대해 아쉬운 것이 참으로 많다. 교황의 권위를 비난하고, 성직자들도 다른 모든 인간처럼 불완전하기 때문에 신성한 중재자가 될 수 없다는 종교개혁 신학자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지금 한국교회의 목사들을 보면 너무나 권위적이고, 교회의 모든 권한을 독식하고 있다. 또 다시 종교개혁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해 보인다. 미국에서의 기독교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의 기독교는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인 면이 많아 보인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시장 경제에서는 자유가 자율로 규정된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하는 것이 자유다. 독립하기 위해서는 재산을 가져야 한다. 재산을 소유하면 그 영역을 독점하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렇다면 재산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적대적인 시장 환경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을 통해 얻는다. 그러나 네트워크 모델에서는 자유가 그 반대로 정의된다. 자유는 재산 소유보다는 네트워크에 소속됨으로써 확보된다. 소속되기 위해서는 접근권이 있어야 한다. 접근권을 가지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격리된 관계보다는 공유된 관계에서 자유가 확보되는 것이다.』(250쪽) 기존 시장 경제와 다른 유럽식 사고방식은 놀라웠다. 네트워크에 소속됨으로써 확보되는 자유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