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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와 기독교 성형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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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대중문화와 기독교 성형수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대중문화와 기독교
(성형수술)
성형수술로 가꾸어진 여성들...
요즘 성형수술이 만병 통치약인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우리 사회의 성형수술 행태는 극성스러울 정도이다. 신문에선 성형수술을 고백하는 것이 당당함의 표현이라고 하고 TV에선 한 여성의 성형수술 전후의 삶을 보여주며 용기 있는 현대적 여성인양 미화하는 판국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자의식의 부족인 것 같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이 스스로 떳떳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타인이 원하는 쪽으로 자신을 맞추어 가게 되고, 외모 또한 마찬가지이게 된다. 남의 시선만 의식하다가 세월 다 보내고 자신의 내면을 가꾸려는 더 중요한 노력은 당연히 뒷전일 수밖에 없다. 잘 안보이니깐, 쉽게 인정받을 수 없으니 말이다. 여성들 스스로 이런 기본적인 자의식이 희박한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기존 질서에 대한 치기어린 반발심에 불과하다. 자기만의 개성이란 것도 그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유행 쫓기에 그치고 만다. 남들이 하니까 나도, 인기연예인이 하니까 나도 한다. 식으로 개떼처럼 여기저기 몰려다니고, 요기조기 기웃거리기 바쁘다. 흔히들 자신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가 못생겼기 때문이라고 피해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성형을 한다라고 말한다. 얼굴을 고치는 것이 과연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인가?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얼굴이라도 어떻게 고쳐서 자신감을 회복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 만큼 원래 내적인 자신감이 없는 것 같다. 수술 후엔 오히려 열등감이 더욱 커질 분이기 때문이다. 얼굴은 예뻐지긴 했지만 역으로 더욱 부실해진 자신의 참 모습을 감추는 것은 더욱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고친 후에도 만족하기 어렵다. 여성의 아름답고자 하는 근원적인 욕구와 맞물려 여전히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칼은 칼을 부르는 법이다. 어자피 시작한거 한번 더 한다고 뭐 나쁘겠는가? 하는 생각에 또 고치고 또 수술한다. 결국 꼬리를 물로 물리는 악순환인 것이다. 또한 정말 필요한 사람이 수술하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 얼마나 되는가? 외모로 인한 차별이 상대적으로 심한 여성들의 현실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많은 여성들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겪는 소외감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커다란 장벽을 마주하고 있는지에 대해 동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동정심만으로성형수술도 화장의 일종이라며 권유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들의 고통스런 상황을 보다 잘 이해한다고 해서 좀 기분 나쁘고 번거롭고 하지만 필요하면 수술하라고 할 수 있을까? 안될 말이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에 대해 나는 원래 이렇게 생겼다. 떪냐?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과 자신만의 개성을 찾는 것, 미에 대한 편견을 바꾸고자 노력하는 것, 그래서 개성과 능력이 존중받는 사회를 도모하는 것이다. 성형수술을 함으로써 이러한 길을 스스로 포기하고자 하는 건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다. 어째보면 이렇게 쉽게 포기해버리는 연약한 여성들의 의식이 이 사회의 비뚤어진미인 지상주의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작은 눈도 매력적일 수 있고, 뻐드렁니도 귀여울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 도식화 된 아름다음의 표준일까??의문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여성들만의 문제라고 하기엔 온당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회 전체의 책임인 것이다. 하지만 올바른 자의식을 갖는 것은 사회의 영향을 받고 여부를 떠나서 한 개인이 독립된 주체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면서 개인의 책임이 가장 큰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나인 것으로 떳떳하지 않을 바에 나의 삶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 것인가? 하지만 우리 사회를 살아가면서 확고한 자의식을 갖기에는 너무나 힘든 사회문화적 그리고 교육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것 같다.
self esteem을 실추시킨 또 다른 원인이자 여성이 외모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근본 원인은 여전히 바닥에서 맴돌고 있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이다. 요즘 아동들 사이에선 심각한 성비의 불균형을 초래할 만큼 현대화와 첨단을 자랑하는 요즘 세상에도 뿌리깊은 남아선호사상은 변할 줄 모르는 것 같다. 그 만큼 동시대의 다른 선진국에 비해 여성의 사회 진출이나 여성의 사회적인 권익은 저열하기만 하다. 사회적으로 자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남성에게 자신의 생존을 의지할 수밖에 없다. 애써 실력을 키워 봤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손쉬운 선택은 권력을 가진 남성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뿐이 아니라 남성은 여성에게 아름답기를 요구하고 있고 여기에서 성형수술은 여성들에게는 거부하기 어려운 대안이 될 수 에 없는 것이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일반화되어 있는 선진국의 경우는 그쪽도 성형수술이 많이 보편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굳이 외모에 모든 것을 걸고자 하는 애처로운 노력이 줄을 잇고 있는 우리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여성에게 있어선 외모가 곧 모든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가 유독 유행에 민감한 것도 이러한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행을 발맞추지 못할 경우 남들에 비해 뒤쳐지고 열등한 것처럼 보이기 싫어서라고들 한다. 성형수술의 유행이 열병처럼 퍼지고 있는 지금의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여기엔 여성의 상품화를 부추기는 우리 사회의 소비지향성과 더불어 강력한 파급력을 지닌 매스미디어에 힘입은 바가 크다. 현대 사회는 소비 중심의 사회이다.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광고가 사람들의 눈을 현혹한다. 여기서 이미지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보다 강한 시각적 자극, 즉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여성은 하나의 이미지로 재생산되고 만들어진다. 여성의 아름다운 외모야말로 가장 잘 나가는 최고의 상품이 될 수 있다. 이것은 매스미디어의 전파력을 통해 더욱 강력하게 전달된다. TV속에 나오는 너무나도 닮고싶은 그러나 그렇기 못해 실의에 빠져 있는 평범한 여성들에게 성형수술이란 하나의 희망이자 구원인 셈이다. 게다가 요즘은 TV가 아예 성형외과의 영업사원 역할을 하며 수술 권하는 사회를 만든다. 오락프로는 물론 주부 정보프로그램에서도 성형수술의 모든 것 성형외과 가이드 등을 전달해준다 또 미모가 안되거나 조금만 얼굴이 큰 연예인이 등장하면 대갈장군, 큰바위얼굴 등의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한 여자 연예인에게 사회자가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성형수술을 생각해본 적이 없느냐’ 는 진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또한 매스컴에선 눈은 동그래야 하고 코는 오똑해야 하고 턱은 날렵해야 한다 등의 규격기준을 만든다. 가뜩이나 자의식의 확립이 덜 된 사회에서 매스미디어의 힘은 거의 일방적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미적인 관심마저 다양성을 읽어버린지 오래다.
성형을 하는 이들 누구나 고통적으로 갖는 생각을 적어본다. 그저 2~3시간만 누워있으면 예쁜 새 얼굴이 되는데 왜 성형수술을 안하겠어요? 수술을 하면 한 3개월은 만족스러워요. 하지만 거울을 보면 고친 곳보다 앞으로 고칠 곳만 보이고 누가 나보고 예쁘다고 하면 그게 진심일까 의심이 들고 화까지 나요 요즘 우리 여성들에게서 쉽게 들려지는 말들이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어느덧 젊은 여성들 사이에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얼굴 생김새에 상당히 강한 불만이 있다. 성형수술이라는 일련의 부자연스런 시술 과정을 감내하더라도 반드시 얼굴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노력해서 개발하기는 귀찮고 마침 돈은 좀 있고 어떻게 해서든 인정받고 대접받고 싶어한다. 남들이 많이들 하니까 나도 한번 해본다 등도 있다. 여기에는 사회의 책임 특히 남자들의 책임이 크다. 그렇게도 억지스런 얼굴이 좋은가? 자르고 깎고 붙이고 세우고 나니 보기 좋던가? 쌍꺼풀 수술 같은 건 수술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두고 보면 수년 내에 코 높이는거 턱 깍는것이 손톱깎는 것과 동격이 될테니깐 말이다. 쌍꺼풀 수술이 그렇게 대수롭지 않다면 그걸 억지로 해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냥 많이들 하니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건가? 문제는 생각하는 방식에 있는거 같다. 어쩌면 결과만을 중시하는 사회 전체의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는 듯 하다. ‘성형수술하면 어때? 예쁘면 장땡이지’라고 생각하는 남자들 ‘자신만의 개성과 아름다움 너나 실컷 찾아봐!’라며 남자들의 저속한 입맛에 맞추고자 기꺼이 굴종하는 여자들 이들 경박한 생각들의 악순환으로 인해 오늘도 모 탤런트의 얼굴을 그리며 신데렐라를 꿈꾸며 머리 모양 바꾸듯 온갖 칼질로 얼굴을 뜯어고치는 수많은 성형미인들이 값비싼 수액과 납섞인 지방으로 두꺼워진 얼굴로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병원문을 나서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에게 만족할 수는 없다 누구든 단점은 있기 마련이고 열등감도 있기 마련이다. 지금의 자신에게 만족한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거기서 끝이다. 수많은 천재와 영웅들의 업적들도 스스로에 대한 숱한 고뇌와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기억하자. 처음엔 능력이 부족한 듯 보이는 사람이 오히려 타고난 재능을 가진 사람보다 더욱 훌륭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순간의 재기나 미모가 보장해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자신의 열등함을 극복해낸 사람이야말로 진정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인생은 당신 얼굴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얼굴이 못생겼어도 능력만 좋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 미리 포기해서 못하는 것 같다. 위에서 말했듯이 자기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생명체..우린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내 몸이 아니라 주님의 몸인 것이다. 그런데 다 뜯어고치고 나중에 하나님께서 너는 누구냐? 라고 물으신다면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진정 주님의 자녀입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정녕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주님은 이런 자녀를 둔 적이 없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사람의 몸은 남에게 보여지라고 보여주라고 지으신 것이 아니다.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갈망하고 주님의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진정한 주님의 자녀가 된다. 이러기 위해서는 성형은 필요 없는 것이다. 얼굴이 못생겼다고 주님의 자녀가 아닌 것이 아니다. 얼굴이 못생겼다고 해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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