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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군도 - 일본제국의 태평양 섬 지배와 좌절』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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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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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남양군도 - 일본제국의 태평양 섬 지배와 좌절』을 읽고
남양군도, 이 곳은 한국인에겐 낯선 지명이다. 나의 경우 수업시간에 지명이 일본과 관련되어 거론되었기에 막연히 일본제국시대의 일본의 식민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따름이다. 조성윤 교수가 쓴 이 책은 다른 일제의 수탈(남양군도의 경우 노동력, 위안부 등)을 다루는 주제에 비해서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즉 비주류라 할 수 있는 남양군도에 대해서 다룬 책이다. 저자가 글에서 ‘이 책은 여러 선학들의 연구성과를 보고 배운 것을 재구성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라고 밝혔듯이, 이 책은 남양군도에 관한 단순한 기초지식을 쌓게 해주는 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책에서 나온 황민화 교육, 그리고 남양군도와 비슷한 입장인 제주도와의 비교를 해보려 한다.
먼저 황민화 교육에 대해 다루기 전에 일본의 황민화 정책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다. 황민화 정책(こうみんかせいさく)은 일본 및 그 식민지에서 주민들에게 일본 천황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은 교육 정책이다. 단순히 충성을 요구하는 정책이라 하면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책을 통한 교육은 남양군도에서 일본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도록 만들었다. 극단적인 선택의 예시로 태평양전쟁에서의 ‘반자이 돌격’, 사이판 전투 막바지에 ‘자살 절벽’, ‘반자이 클리프’에서 사이판 주민 1000명 이상이 뛰어내린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질 것이 확실한 전투에서 돌진한 일본군, 집단 자결을 한 사이판 주민들은 천황이라는 이름 아래 집단으로 사상교육으로 인한 최면에 걸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교육을 통하여 인간을 ‘조종’하는 황민화 교육이 나는 외려 인권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그 전에 식민지 시대에서부터 식민지에 대한 인권이 많이 무시되었다. 그로 인해 1차 대전 이후 미국의 윌슨은 각 민족은 정치적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으며, 다른 민족에게 간섭을 받을 수 없다는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였다. 과도한 식민지 쟁탈을 막는 목적도 있겠지만, 그와 함께 식민지 내의 주민들이 같은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피폐한 삶을 살고 있으며, 이에 대해 그들의 삶을 개선을 하고자 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태평양전쟁의 일본이 앞서 언급한 황민화 교육으로 인한 행동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에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흔히 동물들에게는 생존의 욕구가 있다고 한다. 이는 정상적인 정신을 가진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심리학에서 배웠던 매슬로의 욕구위계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생리적 욕구로 시작하여 안전의 욕구, 애정과 공감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순으로 점점 상위의 욕구를 추구한다고 한다. 또한 상위의 욕구가 충족되기 위해서는 하위의 욕구가 충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하위인 생리적 욕구는 인간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강력한 음식, 물, 수면 등을 포함하는 욕구이다. 그리고 이런 생리적 욕구는 바꾸어 말하면 인간의 생존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문명인이 아닌 비문명인도 스스로의 생존을 위하여, 욕구를 충족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생존에 대한 본능은 인간이라면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황민화 교육을 받은 주민들에게는 그들의 기본적인 권리인 생존에서 조차도 그들의 권리를 지킬 수 없었다. 철저하게 명령에 복종하고 따르는 국민을 만드는 일본은 일본 제국이 국민들을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하여 옥쇄(玉碎)를 중요시함으로써, 대의나 충절을 위한 깨끗한 죽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옥쇄를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를 사지로 내몰았다. 즉, 그들은 주입받은 사상으로 인하여 스스로의 본능 및 욕구와 관계없이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책에서 나온 사모지마라는 학자조차도 위의 사건들에 대하여 ‘집단강제사’라고 주장한다. 즉,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행하는 ‘자결’이라는 단어 대신에 타의에 의해 강제로 죽었다는 ‘강제사’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이에 나는 스스로의 의지가 침해된 만큼 인권이 침해되었다고 본다. 이는 비단 집단자결뿐만이 아니다. 신사참배, 기미가요 제창 등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등 황민화 정책이 인권은 무시한 정책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어쨌든 이러한 황민화 교육의 폐해를 지켜본 일본과 태평양전쟁을 치룬 미군은 2차 대전 이후로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황민화 정책과 관련은 없어 보이지만 2차 대전 이후 인종차별을 금지한 것도 이러한 인권의 관심이 높아졌기에 시행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일본의 황민화 정책을 다루면서 떠오른 것이 있다. 바로 현재 북한의 상황이다. 북한은 현재 유례없는 3대 세습이 이루어졌으며, 3대 동안 자국민에 대한 사상교육을 실시해왔다. 이러한 사상을 굳건히 하기 위하여 북한 주민들은 국가에서 만든 매체를 통해서만 세상을 이해하고, 국가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즉, 국가가 국민을 조종한다는 점에서 황민화 교육과 같으며, 이는 내가 황민화 정책을 사상교육이라 생각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교육이 완벽하지는 않다. 이는 대북 확성기에 대한 북한의 반응으로 알 수 있다. 편협한 시야는 새로운 것을 접하면 넓어지고, 자신의 사고의 틀을 깨게 만든다. 앞선 과거를 통해 황민화 정책과 같은 올바르지 않은 사상교육은 비극을 일으키고, 결국 그 나라의 근간을 흔들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일본제국과 현재 북한을 연결함으로써 현재 북한 내부에 민주주의권 나라의 매체가 돌아다니며, 최근에는 3대 세습을 풍자한 개사된 ‘곰 세 마리’가 북한사회에서 퍼지는 것을 보며 북한이라는 나라가 국민들을 더욱 강하게 조종하기 위해 독재정치를 강화하다 오히려 스스로 자멸에 빠지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남양군도와 제주도와의 비교다. 남양군도에 대해서 더욱 알아보고자 검색하다보니 제주대 허남춘 교수는 피해자의 시각으로 보면 제주도와 미크로네시아가 같은 입장이라고 하였다. 이에 남양군도와 제주도를 비교해보았다. 남양군도는 현재 미크로네시아 지역을 일컫으며, 흔히 우리가 관광지로 알고 있는 괌, 사이판이 이 지역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제주도와 남양군도 모두 현재에 와서는 섬이라는 특성으로 관광지로 발돋움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일제는 제주 모슬포에 군용 목적으로 알뜨르비행장을 건설하였으며, 남양군도의 티니아 섬, 사이판 지역에 비행장 및 비행정 기지를 건설하였다. 이는 당시 시대적 상항에서 제주도와 남양군도가 군사적으로 요충지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제주도의 경우 여러 대륙을 잇는 교두보였으며, 남양군도의 경우 미국과의 충돌이 불가피한 지역이다. 하지만 여기에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바로 제주도는 나라에 속해있는 영토라는 것이다. 그에 비해 미크로네시아의 경우 각 섬마다 추장이 존재하였으며, 일찍이 서구에 의해 식민지화 되며 그들 고유의 언어, 문화 등이 시대가 가며 희미해진 것이다. 또한 제주도는 식민지화 되기 전부터 일본과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던 곳이다. 섬이라는 특성 하에 바다를 통해 교류를 해왔으며, 식민지 노동 착취로 인하여 끌려가기도 했지만 그들은 일제시대, 또 그 후에 그들의 제주도에서의 궁핍한 삶을 파하고자 스스로 일본으로 건너간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미크로네시아의 경우 제주도와 반대로 주로 빈곤층의 일본인, 특히 오키나와 사람이 건너갔으며, 태평양 전쟁 후에도 열악한 일본 환경으로 인하여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고 미크로네시아에 겨주하는 일본인이 많았다. 또한 남양군도의 경우 식민지라기 보다는 신탁통치의 성격이 더 강하다. 즉,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다. 비록 후에 일본군의 요충지로 사용되었지만, 식민지와 신탁통치라는 그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에도 중요한 것은 제주도와 남양군도 모두 일제의 의해 노동착취, 위안부 등의 피해를 입었으며, 이러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남양군도와 제주도를 비교하면서 흥미로운 하나의 사실을 발견하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 제주도와 미크로네시아는 일본과 깊은 연관을 가졌다. 미크로네시아의 경우 일본이 사이판 관광을 홍보하면서 알려졌다. 제주도의 경우 90년대 관광객의 중심이 일본인이었다. 즉, 그들 스스로의 식민지라 할 수 있는 곳의 관광이 유행한 것이다. 이를 통해 어쩌면 일본이 이 두 곳의 관광으로 옛 일본제국의 흔적을 통해 그들 민족이 과거 제국을 이룰만큼 위대했다는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이상으로 남양군도를 읽고 난 후의 생각들을 정리하였다. 아직 남양군도에 대한 연구는 초기에 불과하다. 그리고 식민지의 비극을 간직한 남양군도라는 이름이 현재 우리들에게, 심지어 어른들에게도 낯선 것은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데 너무 주류에만 국한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하여 앞으로의 과제는 남양군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국민들의 관심을 높이고, 역사를 보는 관점도 주류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비주류, 즉 변방도 중시하여 폭넓은 관점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