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사회학의이해] 한국과 일본의 독도문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독도와 독도의 가치
2. 한일간의 독도 주장과 반론
3. 최근의 독도 영유권 논쟁
4. 해결책 및 독도 수호방안
본문내용
1. 군사적 가치
- 1905년 러일전쟁 당시 독도에 망루를 준공하여 러시아 함대를 맞아 대승을 거둠
- 현재 고성능 방공 레이더 기지를 구축하여 동북아 및 국가 안보에 필요한 군사정보를 제공
2. 지질학적 가치
- 조면암, 안산암, 관입암 등으로 구성된 ‘암석학의 보고’
- 해저산의 진화과정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유적
3. 정치적 가치
- 일본은 1905년의 독도침탈 시도는 국제법상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음
- 만약 위의 주장이 정당화 된다면 대한제국 외교권 침탈이나 한국전체의
침탈도 정당성의 빌미를 주게 될 여지를 남길 수 있음
1. 일본 : “세종실록지리지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우산도는 독도가 아니다”
◎ 신증동국여지승람(1531) : 단순한 관찬 지리서가 아닌 조선왕조가 영유하는 영
토에 대한 해설서이며 우산도와 울릉도 두 섬이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울진현
에 속한 조선왕조의 영토임을 밝혀놓은 책
이때 당시에 조선에서는 현재의 울릉도를 우산국, 울릉도, 독도를 우산도로 불
렀으며 일본에서는 현재의 울릉도를 죽도, 독도를 송도로 부르고 있었다.
§ 한국 : “울릉도와 독도를 하나의 섬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
◎ 세종실록지리지(1454): 세종장헌대왕실록의 제 148권에서 제 155권에 실려있
는 전국지리지 8권8책이며 “우산과 무릉의 두 섬이 울진 현 정동의 바다 가운
데 있는데 두 섬이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되
있다.
☞ 조선은 울진 현의 속도로 우산도와 울릉도의 2개 섬이 있음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용복은 누구인가?
조선 후기 숙종 때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땅임을 일
본 막부정부가 자인하도록 활약한 민간 외교가이자
어부이다. 1693년 어민 40여명과 울릉도에서 고기잡
이를 하던 중 고기를 잡기 위해 침입한 일본 어민을
헐책하다가 부하 박어둔과 함께 일본으로 잡혀갔다
이 때 울릉도가 우리 땅임을 주장하고 막부로부터 울
릉도가 조선 영토임을 확인하는 서계를 받아내었다.
1696년 봄에 안용복은 다시 10여명의 어부들과 울릉
도에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마침 어로중인 일본 어선
을 발견하여 송도까지 추격해 조선의 영토에 들어와
고기를 잡는 침범 사실을 문책하였다. 또 울릉우산양
도감세관이라 자칭하고 일본 호키주에 가서 태수에
게 국경을 침범한 사실을 항의, 사과를 받고 돌아왔
다. 나라의 허락 없이 국제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