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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와 이슬람 서양사와 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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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사와 이슬람 서양사와 이슬람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본격적 공격의 깃발을 먼저 든 쪽은 아랍 이슬람세계였고, 그들의 공격은 크게 성공했다. 무함마드가 세운 이슬람제국은 그의 사후 100여 년 만에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무함마드의 이슬람제국이 짧은 기간에 영역을 성공적으로 확장해간 일은 놀라운 일이지만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슬람제국이 기독교세계와의 역사적 첫 만남을 거의 완승으로 장식한 일이다. 북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하고 나아가 지중해해상권을 장악한 이슬람제국은 기독교도들을 유럽대륙으로 몰아넣는 데 성공했다. 지중해는 오늘날도 지중해 주변국가에게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지만 당시의 지중해는 유럽아시아아프리카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는 지중해세계의 중심지였고, 따라서 지중해의 제해권을 장악한 나라가 지중해 해역의 지배권 내지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벨기에 출신의 경제사가인 삐렌느는 유럽을 고대에서 중세로 전환시킨 것은 이슬람제국의 지중해 진출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삐렌느명제로 알려진 학설이다. 삐렌느에 따르면 게르만족의 침략은 지중해 문화의 본질을 조금도 변화시키기 못했지만 아랍 무슬림들의 지중해와 그 주변지역의 점령은 지중해문화의 근본을 무너뜨렸다. 그는 게르만족의 침략이 지중해세계에 어떤 새로운 원리, 새로운 경제, 새로운 사회질서도 도래시키지 않았으며 언어상으로도 아무런 변화를 초래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게르만족은 로마문화의 핵심적 요소를 파괴하지 않았으며 지중해세계에 어떤 혁신도 도래시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랍인들은 지중해세계와 그 문화를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다. 그들은 지중해 세계를 동과 서로 분리시켰고, 서지중해가 더 이상 유럽 기독교도들의 물화와 문화의 교류지가 될 수 없게 했다. 지중해를 아랍인들에게 빼앗긴 서유럽은 이제 자체의 자원으로 살아가야 했다. 기독교 교회 또한 아랍인들과 싸워 유럽대륙을 지켜낸 게르만족 군주와 동맹해야 했고 또한 게르만국가에서 발전한 새로운 사회질서와 결합해야 했다. 기독교 유럽은 지중해의 상실로 인해 이전의 왕성한 문화창조력을 상실할 만큼 위축되었지만 이슬람세력으로부터 지중해를 되찾기 위해서는 십자가운동이라는 범기독교세계의 투쟁을 준비해야 했다.
2. 유럽 기독교세계의 대반격 : 8차례에 걸친 십자군의 원정
지중해를 아랍인들에게 넘겨주었을 뿐 아니라 북쪽의 노르만족과 동쪽의 마기르족 등 외적들의 침략으로 매우 위축되어 있던 유럽세계도 11세기 중엽을 지나면서 정치적으로는 물론 사회적경제적으로 상당한 활기를 되찾은 유럽의 기독교도들은 이슬람교도들을 응징해 기독교의 성지를 탈환하고, 지중해를 되찾을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으로 자부했다.
교황권의 신장과 더불어 기독교의 교세가 확대되면서 교황청의 영향력도 성장해 갔다. 교세의 현저한 성장과 성직자의 권위향상은 당연히 교황권의 신장으로 이어졌다. 우르반 2세는 십자군 운동을 통해 기독교세계에 대한 자신의 권위를 신장시키고 특히 자신의 과세권을 기독교세계 전체로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유럽 기독교도들의 십자군운동은, 성지탈환이라는 당초의 목적달성에 실패하고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상업적 성격의 전쟁으로 변질되어 십자군이란 이름이 무색할 지경이었지만 적어도 두 가지 면에서는 성공했다. 하나는 지중해를 되찾아 그들의 활동무대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슬람교도의 기독교와 그 교도에 대한 적대의식을 북돋우고 증오감을 증대시켰다는 것이다.
지중해는 2백여 년에 걸친 십자군운동으로 인해 다시 유럽인의 활동무대가 되었다. 십자군 병사와 함께 각종의 무기와 군수물자가 대량으로 운송되었고 그로 인해 지중해는 다시 유럽 기독교도들의 교역로로 부활했다. 그리고 그렇게 부활한 지중해 원거리상업은 거의 동시에 등장한 유럽의 내륙 시장과 함께 유럽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켜 결국은 유럽을 초기 상업자본주의적 사회로 이끌었다.
십자군운동은 총체적 실패를 기록한데다 십자군 전사들의 일탈행위, 이슬람세계와 기독교세계 사이의 대립을 자극하는 등 많은 부작용을 남긴 전쟁이었다. 특히 이슬람교도의 기독교에 대한 적개심은 최고조에 달했고, 이후 두 종교는 화해는커녕 서로 상대의 존재마저 인정하지 않으려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무슬림에 대한 십자군의 가혹행위는, 투르크족의 술탄 등 무슬림 지배자들로 하여금 관용적 태도를 버리게 했다. 십자군은 관용 면에서나 지적 관심의 폭에서 서유럽보다 우월했던 아랍의 도시문화를 파괴했다. 그리하여 십자군원정이 끝날 무렵에는 아랍의 지적문화적 창조력이 서양으로 옮겨갔고, 서양은 약 1백여 년 후에 이탈리아를 필두로 르네상스문화를 발전시켰다.
십자군전쟁 이후 셀주크 투르크족은 쇠망했는데, 13세기 말경에 이르러 결국에는 여러 투르크 부족이 할거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여러 투르크부족 중에서 오스만 투르크족이 점차 강성해져서 셀주크 투르크족에 이어 이슬람세계의 주인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기독교세계는 다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3. 이슬람세계의 재공격
비잔틴제국은 서로마제국이 망한(476년) 후 로마제국 전체의 전통을 계승한다고 자부했지만, 국력은 그 자부심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문학학문예술 등에서 훌륭하고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서구 기독교 세계를 보호하고 슬라브족을 기독교로 개종시킴으로써 인류역사에 크게 이바지했다. 서구 기독교세계 중심으로 이야기하자면 비잔틴제국은 동쪽에서 이슬람제국의 확장을 막아 결과적으로 서구 기독교 세계의 문화가 파괴되는 것을 막았던 것이다. 하지만 셀주크 투르크족에 이어 이슬람세계의 주도권을 손에 넣은 오스만 투르크제국이 1453년에 비잔틴제국을 정복하고 발칸반도 대부분을 장악했다. 그리하여 이슬람세계는, 기독교세계의 십자군운동으로 수난을 당한 후 15세기 중엽에 다시 동유럽의 기독교세계를 제압하게 된다.
4. 가톨릭교 신성동맹의 오스만 투르크제국 응징
오스만 투르크의 급속한 성장은 유럽 기독교세계에게 더할 수 없는 낭패감과 위기감을 주었다. 하지만 오스만 투르크제국의 성장, 특히 발칸반도와 지중해에서의 성장은 유럽 기독교세계가 16세기에 연출한 분열 내지 혼란에 힘입은 바가 적지 않았다. 다시 말해 16세기의 유럽은 개별 국가적 차원에서는 물론 유럽적 차원에서도 심각한 대립과 내분에 빠져 있었고, 따라서 그들이 오랫동안 타도해야 할 적으로 여겨온 오스만 투르크족의 침입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16,17세기에 유럽 기독교세계를 대립과 혼란으로 이끈 것은 바로 마르틴 루터와 쟝 칼뱅의 종교개혁 운동이었다.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 특히 독일프랑스영국 등, 전체로서의 유럽 기독교세계는 신교도와 구교도의 대립과 싸움으로 심각한 정치적사회적 혼란을 겪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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