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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민주주의 만남 유교와 민주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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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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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역사적으로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서양의 인식은 몇 번의 굴곡을 겪으면서 변화되어 왔다. 서양의 역사에서 이른바 ‘동양’에 대한 인상이 명시적인 형태로 등장하는 첫 번째 사례는 13세기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계기로 형성되었는데, 이 때 유럽인들은 동양을 황금으로 가득 찬 엘도라도의 땅으로 생각하였다. 마르코 폴로가 실제로 중국에 왔다갔는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많지만, 아무튼 이어지는 대항해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가는 데 많은 자극을 주었을 정도로 동양에 대한 서양의 인식사에서 동방견문록은 하나의 획을 긋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대항해 시대로 들어오자 이국문명에 대한 정보가 유럽에 넘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이 시기 동양에 대한 서양의 인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제수이트 교단의 활동이었다. 기독교 선교라는 목적의식 때문에 정보가 부분적으로 왜곡된 감이 없지도 않았지만, 마테오 리치로 대표되는 제수이트 교단의 중국에 대한 이해의 폭은 상당히 광범위하였다는 점에서 이후 계몽시대 서양의 동양인식에 결정적인 토대를 제공하였다.
이어지는 1718세기 계몽주의시대 서양의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던 동양에 대한 인식은 한 마디로 계몽군주에 의해 영도되는 이상적인 국가로서의 중국관이었다. 특히 당시의 유럽 지식인들은 독단을 거부하고 관용의 정신이 충만한 유교 속에서 자신들의 종교적정치적 이상을 찾아내고 환호하였다. 상식적 합리성에 기반한 유교의 실천적 도덕정치의 이념은 절대왕정에 대항하던 계몽주의시대 지식인들에게 이상적인 정치철학으로 이해되었으며, 유교적 소양으로 무장된 중국의 군주는 가장 이상적인 계몽군주의 전범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신의 서재에 공자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경배를 하였던 볼테르의 경우가 이 시기 서양 지식인들의 그런 유교관을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 서양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풍미하였던 이런 우호적인 동양인식은 식민지 경영과 산업혁명 등으로 서양의 힘이 동양을 압도하기 시작하는 19세기로 넘어오면 180도로 변한다.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진보적 신념에 고취되었던 당시 지식인들의 눈에 비친 동양은 더 이상 철인(哲人) 군주가 다스리는 이상향이 아니라 삼권분립과 같은 합리적 정치제도가 부재하는, 철저하게 1인의 전제군주에 의해 통치되는 정체된 문화였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동양은 역사 자체가 없는 정지된 공간이며, 따라서 이제는 거꾸로 서양에 의해 계몽되어야 하는 미개의 영역으로 자리매김되기에 이른다. 이런 시각이 서양의 제국주의적 시각과 맞물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이론적 토대로 작용하면서 이후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수행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다가 유교를 중심으로 한 동양의 정신문화가 다시 서양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후반으로 넘어 오면서부터이다. 20세기에 들어와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불거지기 시작한 서양의 근대적 이성에 대한 총체적 회의와 전지구적 차원의 산업화로 가속화된 생태 및 환경 오염에 대한 위기의식 그리고 지나친 서구적 개인주의로부터 비롯된 인간성 상실과 소외 문제 등에 직면하면서 ‘동양’이 대안을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그 계기이다. 당시 동아시아 각국의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유교를 주목하는 분위기도 여기에 일조하였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본다면 유교에 대한 현대적인 담론들은 ‘동양’의 주체적인 문제의식으로부터 촉발되었다기보다 서양적인 문제의식에 힘입어 활성화된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출발점은 비록 그러하더라도, ‘세계화’가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주류적인 삶의 양식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이들 담론은 동시에 현대문명에 대한 전지구적 차원의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부인 할 수는 없다. 우리 전통문화의 중심성분인 유교를 오늘의 보편적인 담론의 틀 속에서 조명해 보는 일은 이런 맥락에서 보더라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작업이다. 여기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유교의 새로운 가능성을 오늘날의 지배적인 정치적 담론인 자유민주주의와의 상관성 속에서 읽어보고자 한다. 이 작업을 통하여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이후의 여러 가지 가능한 경로를 검토해 보는 과정에 하나의 유익한 참고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2. 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성격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정체를 규명하는 작업은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에서부터 그 논의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는 것이 좋다. 그것은 이 이데올로기가 왜 ‘민주자유주의’가 아니고 ‘자유민주주의’라고 불리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용어가 민주주의의 여러 가지 가능한 유형 가운데 ‘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를 지칭하는 용어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용어에서 포인트는 ‘민주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런 까닭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는 앞의 수식어, 즉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적절하다.
‘자유주의’, 이것은 인류가 지향하는 몇 안 되는 궁극적 가치 가운데 하나인 ‘자유’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서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받을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표방하는 가치와 그 이데올로기 자체의 가치를 종종 혼동하는 우리들의 잘못된 습관에서 비롯된 그릇된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유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우리는 그러한 평가가 얼마나 일면적인 것인가를 확인할 수 있다. 자유에 대한 전통적인 분류 방식인 ‘소극적 자유(negative freedom)’와 ‘적극적 자유(positive freedom)’라는 범주를 가지고 말한다면, 자유주의자들이 줄기차게 확보하려고 시도했던 자유는 ‘…… 향한 자유’를 뜻하는 적극적인 의미의 자유가 아니라 ‘……로부터의 자유’를 지향하는 소극적인 의미의 자유이다. 자유주의자들이 지향했던 이러한 소극적 의미의 자유 개념으로부터 우리는 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의 실제적인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확보할 수 있다.
‘……로부터의 자유’라는 말 속에는 당연히 ‘무엇(A)으로부터 무엇(B)을 지킨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러면 자유주의의 이론에서 A항과 B항에 들어갈 내용은 무엇일까? 그것은 각각 ‘국가(혹은 사회)’와 ‘개인의 권리’라는 항목이다. 자유주의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국가(혹은 사회)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자들이 그렇게 지키려고 한 ‘개인의 권리’는 또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로크(John Locke)의 표현을 빌린다면, ‘생명’과 ‘자유’와 ‘재산’에 대한 권리이다. 인간은 일단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자기를 보존해 갈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어떤 우월한 권력이나 다른 인간의 의지 혹은 다른 인간이 가지는 입법권에 종속됨이 없이 오직 자연법만을 자기를 지배하는 법칙으로 삼는 자유의 권리를 지닌다. 더불어 인간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소유권과 자연물에 가치를 부여하는 노동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취득하는 결과물에 대한 배타적인 권리를 갖는다. 즉 ‘생명, 자유, 재산(소유물)’에 대한 불가침적인 권리가 곧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개인적 권리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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