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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민에게 고함과 박정희를 넘어서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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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국민에게 고함과 박정희를 넘어서 독후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최근에는 잠잠한 편이지만 아직까지도 논란의 대상으로 빠지지 않는 화두가 ‘박정희’일 것이다. 나 역시 학교에서 배운 단편적인 사실들과 주변에서 들은 평가가 박정희라는 사람의 평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차에 최근의 정치 기사나 문화 기사 중 TV드라마와 관련하여 다시 논란이 되고 있는 박정희라는 사람에 대하여 제대로 알아보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정치사에 다시 없을 독재자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불세출의 영웅까지 극과 극의 평을 받는 박정희를 제대로 알아보고자 선뜻 책을 사게 되었다.
처음으로 구입한 책은 ‘한국 국민에게 고함’이었다. 아무래도 평전 종류가 위주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저자가 박정희였다. 대통령으로 집권하면서 무수한 정책을 시행하면서 어떠한 생각을 했을까, 무슨 말을 국민에게 하고 싶었을까 하는 의문은 이 책을 통하여 쉽게 풀릴 듯 하였다. 그러나 예상외로 책은 각 시기의 연설문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기대했던 책은 아니었으나 연설문이라는 것의 특성상 그 정황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을 것이고 -정치적으로 꾸미는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나 - 어떠한 분위기에서 무슨 말을 하였을까 하는 부분은 충분히 충족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본 책은 ‘박정희를 넘어서’였다. 처음의 책을 읽는 동안 나름대로 생각의 정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그렇다면 사람들이 박정희를 비난하는 이유를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자료를 찾아보았다. 여러 교수님들의 논문이나 사설 등을 읽어보았는데 그 중 많이 언급하던 책 중 하나가 ‘박정희를 넘어서’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왜 박정희가 비판받아왔는지 조목조목 알 수 있었다.
Ⅱ. 책의 주요 내용
⑴. 박정희 신화의 이유.
‘박정희를 넘어서’는 우선 박정희 신화의 이유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1979년 심복의 총에 사망한 박정희는 1980년대 중반까지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국민들은 당연히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이 열릴 것을 기대하였고 그를 흘러간 인물로만 기억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똑같이 군사쿠데타를 통해 새로운 독재자인 전두환이 등장하였다. 국민의 힘으로 박정희의 독재를 극복하지 못했기에 국민들은 새로운 독재자의 출현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1980년대는 새로운 암흑기가 되었고 박정희는 사후 국민들로부터 잊혀졌지만, 박정희 정권보다 더한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부정비리부패를 바탕으로 부활한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1987년 6월 민주화투쟁을 통해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했다. 그런데 이는 민주화운동 세력 뿐 아니라 그 동안 숨죽이고 있던 박정희의 후예들에게도 복귀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박정희 추종세력은 자신들의 등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박정희를 이용, 자신들의 정당을 ‘신민주공화당’이라고 명명하였다. 또한 지역주의에 편승, 박정희의 정치적 장자인 김종필을 대통령 후보로 출마시고 1988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성공을 거두며 정계에 복귀하였다. 민주화운동세력이 박정희를 무덤에서 부활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은 역사의 역설일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더욱 가속화시킨 것은 역설적이게도 ‘민주화의 기수’라는 김영삼이었다. 김영삼은 초기 개혁정책으로 인해 90%를 상회하는 최고의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보수세력들에 의한 개혁 실패, 정권의 도덕성에 상처를 주었던 여러 사건들, ‘역사바로세우기’의 실패, 그리고 결정적으로 IMF관리체제로 인해 김영삼은 몰락하였고, 보수세력은 박정희 살리기 작전에 성공하였다. 보수세력들은 김영삼 정부 등장 이후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민주화의 물결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하자, 조선일보 및 중앙일보의 주도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바로 세운다는 명분하에 과거의 독재자들을 미화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왜 국민들은 이러한 보수세력들의 담론에 포섭되었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박정희 시대에 공유되었던 지배적인 통치원리들의 집합체로서의 ‘박정희식 개발독재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구축이 실패”했다는 지적에서 찾을 수 있다. 1990년대의 한국사회가 탈군부독재 민주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새로운 기반 구축에 실패하였고, 변화하는 국제 경쟁체제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자본노동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새로운 경제운용방식을 개발하지 못했으며, 성장 및 반공 이데올로기와 결합된 박정희식 민족주의를 대체할 이데올로기를 개발하지 못한 것이다.
2. 박정희 정권의 성립
박정희는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자의로 만주 괴뢰 군관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 일본 육군사관학교으로 유학 간 뒤, 괴뢰 만주군 육군 중위로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귀국한 그는 국방경비대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령으로 근무하던 중 좌익 조직에 가입했다가 여순 반란 사건 후의 숙군과정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군대 내 좌익 조직 조사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