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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 공리주의 의사 상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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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공리주의 공리주의 의사 상적 배경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공리주의 일반적인 정의는 행위의 옳고 그름의 여부는 결과의 정당성에 의해서 판단되어야 한다는 윤리론 이다. 그런데 공리주의는 윤리론 뿐 아니라 공리주의적 사회 및 정치사상을 포함한다. 결과론적 윤리설을 기반으로 하는 공리주의적 사회 및 정치사상은 사회제도 및 국가를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규정하고 그것을 효용 면에서 평가한다.
공리주의의 사상적 배경으로 근본적인 관계가 있는 것은 영국의 경험론이다. 공리주의는 이기적인 개인이 어떻게 사회적인 이익과 선에 부합되도록 행위를 할 수 있는가라는 윤리학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쾌락과 고통이라는 심리학적 명제를 기본적 분석도구로 삼았다. 공리주의가 의존하는 심리학적 방법인 이른바 연상 심리설과 쾌락주의설은 흄의 인식론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있었으며 로크, 홉스, 베이컨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 볼 수 있다. 흄에 있어서는 의지작용과 행동은 결국 감정의 기계론적 결합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인상은 일정한 쾌와 불쾌의 감정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며 어떤 대상이 나에게 쾌감을 일으키게 할 때는 이를 도덕적으로 시인하게 되며 나에게 불쾌감을 줄때에는 이를 도덕적으로 부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대상이 나에게 쾌감을 주어 도덕적인 시인을 느끼게 하는 것은 그것이 유용(Useful)하기 때문이고, 유용하다는 것은 곧 나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용하기 때문에 느껴진다는 도덕적 시인의 느낌은 나에게는 유용하지만 타인 혹은 사회전체에는 해악이 되는 행동과 타인 혹은 사회전체에는 유용하지만 나에게는 해악이 되는 행동이 있을 수 있으므로 그는 이 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동정(Sympathy)와 자선심(humanity) 이라는 또 하나의 심리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공리주의는 이 같은 흄의 심리학적 방법을 빌려서 이기적인 개인과 사회적인 선이라는 상호 배타적인 대립관계를 조절하여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려 한 것이다. 지금까지의 공리주의가 기초하고 있는 영국의 경험론에 있어 중요한 점은 공리주의사상이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기초개념으로서 심리학적 방법을 택했다는 사실이며 이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인간감정을 그 분석도구로 삼음으로써 공리주의 정신에 평등의 개념이 내재될 수 있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2. 공리주의 이론 - 벤담(Jeremy Bentham)
고전적 공리주의자들은 공통적으로 행위의 옳고 그름이 그 행위에 관련된 모든 인간의 행복에 기여하는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이 원칙은 우리의 현실적 의무를 해명해 주고 여러 도덕적 기준들을 도출해 내는 최고의 도덕원칙으로 이해되었다. 공리주의 원칙은 세 가지 상호 연관된 구성요소로 분석될 수 있다. 첫째는 결과주의 혹은 목적론의 원칙으로서, 행위의 옳고 그름은 오로지 그 행위에서 말미암는 결과의 좋고 나쁨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는 형식적 규정이다. 둘째는 쾌락주의 원칙으로서, 그 자체로서 즉 본래적으로 좋은 것은 쾌락 혹은 쾌락에 의해 규정되는 행복뿐이며 본래적으로 나쁜 것은 고통 혹은 불행뿐이라는 내용적 규정이다. 셋째는 보편주의 원칙으로서 자신의 쾌락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는 매개적 규정이다. 공리주의는 이들 세 요소에 대한 강조점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용어로 불릴 수 있는바, 초기에는 보편적 쾌락주의가 지배적 형태였고 시즈위크 이후로는 결과주의가 공리주의의 핵심적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공리주의 이론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할 때에는 시대적 배경이 성숙해 있었다. 즉 18-19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을 통해 고도의 산업사회를 이룩하였으며 자본주의체제가 성숙되어 새로운 생활양식과 사회 구조를 낳았고 이에 따라 상업적, 산업적 중산계급이 새로운 시민세력으로 대두되었다. 산업적 시민은 적극적으로 자기들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보호하는데 필요한 정치권력의 주체가 되고자 하였으며 의회주의의 개혁을 가능케 할 수 있는 실천적 개혁이론을 찾았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벤담은 원인 없이 어떤 행위도 있을 수 없다는 입장 아래 그의 저서 에서 심리학적이고 윤리적인 쾌락주의자로서 그의 기본자세를 명백히 밝혔다. 인간의 행위를 일으키는 것은 동기인데 쾌락의 추구와 고통의 회피가 인간이 가지는 유일한 동기이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행위는 쾌락에의 욕망과 고통에 대한 반감에 의해 원인되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의무나 책임의 이념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이 법적책임을 지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따르게 될 형벌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며 사회의 비난이란 고통을 싫어하기 때문에 도덕적 의무로 충만 될 수 있는 것이고 이것들은 양심의 고통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벤담은 이러한 분석을 기반으로 이성와 법률에 의해 행복한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체계의 기초로서 공리의 원리 를 들고 있다. 공리의 원리란 어떤 행위가 그 행위와 이해관계를 갖는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대시키거나 이를 감소시키는 경향, 즉 그들의 행복을 촉진시키거나 그렇지 않게 보이는 경향에 따라 이것은 시인하거나 부인하는 원리를 말한다. 그것은 또 개인의 모든 행위만이 아니라 정부의 모든 정책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그의 행복의 개념은 최대한의 쾌락추구를 뜻하는데, 이 쾌락의 추구가 공리의 원리에 부합되도록 추구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의 이익이란 사회를 구성하는 각자성원의 이익의 총계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벤담의 개인주의적 평등사상이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최대행복의 원리에는 논리적인 모순점이 발견되고 있다. 즉, 인간은 각자 스스로의 최대행복, 자신을 위한 최대의 쾌락을 추구하지 않고 어떻게 공리의 원리에 부합되는 최대의 쾌락인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이것은 그가 제시한 인간의 본성은 언제나 쾌락의 추구와 고통의 회피라는 이기성을 갖는데 공리의 원리는 이해관계를 가진 타인에 대해 항상 은혜, 이익, 쾌락, 그리고 행복을 부여하는 이타적인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몇 가지 도덕적인 의무를 제기하기도 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벤담은 이 같은 내면적인 의무감에 덧붙여 개인의 이기적인 행위가 공리의 원리에서 벗어난다면 외적인 힘에 의해 작용되는 네 가지 제재가 따른다고 말한다. 필연적인 자연법칙에 의해 작용되는 물리적인 제재, 통치 권력에 의해 작용되는 법적제재 또는 정치적 제재, 사회적인 논란과 비난에 의해 작용되는 도덕적 제재, 신에 의해 작용되는 종교적 제재 등이 그것이다.
벤담의 공리주의 기초이론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그가 제기한 쾌락계산법이다. 이 쾌락의 양적 계산에 고려되는 것으로는 강도, 지속성, 확실성, 순수성, 다산성 등을 들 수 있는데 최대행복을 측정하는 기준을 최대한 공정하고 보편적으로 설정하려는 그의 노력에는 철저한 자연과학적 정신이 깃들어져 있다.
초기 공리주의자들, 특히 벤담과 제임스 밀의 위업은 그들이 성숙해 가는 산업사회 속에서 자본주의체제를 명백히 이해하고 있었으며 시민사회의 대두에 따른 개인적 자유를 철저히 추구해 나갔다는 것이다. 그들은 정치, 경제, 법률 등 사회 모든 분야의 제도적 모순에 대해 일대개혁을 시도하는데 그것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기본원리에 입각하는 것이었으며 주로 벤담의 입법이론을 통해 이루어졌다. 벤담에 따르면 입법자는 특수한 관행과 관습을 만든 시간과 장소에 관한 특수한 조건만을 알면 다음에 가장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는 고통과 형벌을 배분함으로써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획기적이며 개혁적인 것으로서 한편으로는 사회연구의 관점에서 역사성을 무시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당시의 많은 법률상의 모순점을 해결하여 민법과 형법의 구조에 있어 필요한 사회질서를 제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즉, 모든 개인이 평등하게 자기이익을 구할 수 있는 제도의 전에 없었던 명확한 기준을 제공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정부의 기초가 사회계약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필요성에 있다고 하여 정부의 목적을 공리의 원리에 입각한 효과적인 입법 활동을 전개시키는데 두고 있으며, 가장 훌륭한 정부형태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라는 것이며 민주주의를 옹호한다. 초기 공리주의자들은 민주정치의 제도로서 의회를 중요시하고 의회에 완전한 법적 주권을 부여했다. 그들은 최종적인 주권은 인민에 고유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벤담이나 제임스 밀은 완전한 보통선거제에 대해서는 실제로 큰 믿음을 보이지 않았지만 최대행복의 계산법에 있어 모든 사람은 각각 하나로 계산된다는 전제는 평등을 강조한 개인주의 자유사상을 확립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초기공리주의의 이러한 사상은 그들의 경제이론에서도 명백히 나타난다.
3. 공리주의 이론 - 밀(James Mill)
밀의 공리주의는 벤담이 설명했던 최대행복의 원리를 명백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출발점으로 한다. 그런데 밀은 벤담의 양적인 쾌락설에 대해 쾌락의 도덕상의 질적 차이를 인정한 질적인 쾌락주의를 제기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벤담의 유물론적 기계론은 인간의 감정인 쾌락과 고통을 단순히 양적 대소로 환산하여 가치를 세움으로써 이론자체가 건조하게 되었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개인의 자율성을 도외시한 과오를 낳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밀은 공리주의에 결여된 도덕성을 부여하여 공리주의 철학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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