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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리의 문해교육 - 개념, 방향, 우리나라의 문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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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프레이리의 문해교육 - 개념, 방향, 우리나라의 문해교육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프레이리의 ‘문해교육’
Ⅰ. 문해의 개념
일본으로부터 해방 후 수십년 간 우리나라는 국가적 문맹률이 초기에 비해 크게 낮아짐에 따라 그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어갔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해교육에 대해 막연하게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라는 개념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문해교육의 본질적 의미를 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문해’란 무엇인지 그 개념부터 정의해야 할 것이다. 우선 일차적으로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살펴봤을 때 문해는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다. 한편 유네스코의 교육통계표준화전문위원회는 자신의 일상생활에 관한 짧은 간단한 문장을 이해하며 읽고 쓸 수 있는 자를 문해라고 정의하였다.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1995). 교육학용어사전. 하우동설
그러나 이는 표면상의 의미를 나타내 보인 것에 불과하다.
프레이리는 문해의 본질을 말하기에 앞서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읽기는 단순히 글자 또는 언어를 해독하는 일이 아니다. 읽기는 바로 실타래 같은 세계에 대한 지식을 풀어내는 과정이다. 언어와 현실은 별개가 아니라 역동적으로 얽혀 있는데 읽기란 글과 세계(text and context)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읽기는 비판적 읽기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프레이리가 문해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를 내릴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문해란 단순히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글을 읽고 쓰는 데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세계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프레이리는 세계를 읽는 일과 글자를 읽는 일을 구분짓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우기 전에 세계를 쓰는 법, 즉 세계를 변화시키고 세계에 접촉하는 경험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에 접촉하고 변화시키는 것, 바로 세계에 대한 의식은 먼 옛날 인간이 역사를 쓰기 시작했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그 기원을 알 수 있다. 인간은 역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객관적인 현실의 변형이 일어났고, 이 변형을 통해 세계에 대한 의식이 구성되었다. 세계의 변화에 대해, 변화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더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인간은 세계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문자 형태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바는 글자를 읽고 쓰기 이전에 세계를 읽고 쓰는 활동이 더 먼저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하여 프레이리는 문해에 있어 세계를 그 자체를 읽고 쓰는 능력을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우리가 글을 안다 하더라도 세계를 읽고 쓰지 못한다면 비문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또한 프레이리는 문해는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고 말한다. 세계를 읽고 쓰는 일은 마무리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다.”라는 말처럼 문해는 끝마칠 수 없는 계속적 과정이다. 그리고 세계를 읽고 쓰는 과정을 통해서 개인과 사회는 끊임없이 성장하게 된다.
Ⅱ. 프레이리의 문해교육
프레이리는 이 책에서 전반적으로 비판적 문해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프레이리는 문해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교육의 중립성에 대해 언급한다. 프레이리는 정치와 교육은 분리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정치 행위의 교육적 속성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비판적 관점에서 교육과정의 정치적 속성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정치와 교육에서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교육과정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누구의 이익을 위하여 교육을 촉진하는 것인가? 우리는 누구의 이익을 위하여 정치 행위를 하는 것인가? 이와 같이 비판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정치와 교육은 분리시킬 수 없다고 보는 만큼 교육은 자율적이고 중립적인 실천으로 볼 수 없다. 교육의 중립성은 교사의 순수한 책무이며, 진실하고, 도덕적이며 훌륭한 이상적 인간 형성에 기여한다는 생각은 순진한 생각일 뿐이라고 프레이리는 주장한다. 교육은 지배 이데올로기를 복제하거나, 변형하여 재생산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육의 중립성이 불가능하고, 교사가 중립적이지 않다고 해서 교사가 조작자라는 뜻은 아니다.
프레이리는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교육자는 없다고 말하면서 교육자가 타인에게 귀기울이는 일은 교육자의 책무라며 강조하고 있다. 교육자는 타인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야하며, 권위주의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권위주의자는 ‘알고 있는 사람’이 가르치고 ‘모르는 사람’이 배운다는 식으로 가르침과 배움을 구별하는데 이는 교육자와 학습자의 상호적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다. 교육은 고정불변의 지식을 습득한 사람이 그것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이 아니다. 문해 상태로 향하는 학습자는 일방적으로 전달받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며, 스스로 주체가 되어 세계를 읽고 쓰는 창조적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이러한 개념에서 문해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알 수 있다.
문해교육에 있어 단순히 읽고 쓰는 방법만을 가르치는 것은 기계적인 방식이며, 이는 권위주의적인 방식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고정불변의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인 것이다. 과거의 많은 문해교육은 교육자의 권위적인 힘으로 이루어졌다. 다르게 말하면 글을 읽고 쓰는 법만을 가르쳤으며, 학습자들이 마주치는 현실 그리고 세계와는 무관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문해교육은 지식 행위이면서 창조 행위이자 정치 행위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는 세계를 읽고 쓰기 위한 노력으로 귀결된다. 글을 읽고 쓰는 문제보다 세계를 보다 엄격히 읽어 내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프레이리는 최종적으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레이리가 꿈꾸는 사회는 말하기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권리인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민중의 목소리가 적극적으로 반영되어야 하는데 프레이리는 자신이 말하는 문해교육이 바로 이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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