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머신

종교의 의미와 목적을 읽고 종교의 의미와 목적 독후감 종교의 의미와 목적 감상문

 1  종교의 의미와 목적을 읽고 종교의 의미와 목적 독후감 종교의 의미와 목적 감상문-1
 2  종교의 의미와 목적을 읽고 종교의 의미와 목적 독후감 종교의 의미와 목적 감상문-2
 3  종교의 의미와 목적을 읽고 종교의 의미와 목적 독후감 종교의 의미와 목적 감상문-3
 4  종교의 의미와 목적을 읽고 종교의 의미와 목적 독후감 종교의 의미와 목적 감상문-4
 5  종교의 의미와 목적을 읽고 종교의 의미와 목적 독후감 종교의 의미와 목적 감상문-5
 6  종교의 의미와 목적을 읽고 종교의 의미와 목적 독후감 종교의 의미와 목적 감상문-6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 레포트 > 독후감
  • 2015.03.29
  • 6페이지 / hwp
  • 1,000원
  • 30원 (구매자료 3% 적립)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종교의 의미와 목적을 읽고 종교의 의미와 목적 독후감 종교의 의미와 목적 감상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종교의 의미와 목적
이 책을 읽을 무렵 쯤 근처 카페에 갔는데 정확하게 문구가 기억나지는 않지만 “Im not religious person except when I drink coffee.”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카피문구이다. 커피를 마시면 종교적인 인간이 된다는 건가? 그러면 종교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매일 이 집에 와서 커피를 마셔야 하나? 아직도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런 카피문구를 쓰는지 그 의미를 파악하지는 못했다. 다만 그 카페 주인은 ‘coffee’대신 자신의 가게 이름을 쓰고 싶었을 것이라는 짐작정도는 할 수 있겠다.
어쨌거나 이 ‘종교의 의미와 목적’책을 읽는 것은 물론 훌룡한 책이라는 것은 분명하겠지만 그리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닌 것 같다. 마치 그가 말하는 신앙(faith)은 전 지구인들이 그리스도인의 맹아를 가지고 있다는 그런 의미로 보이기 때문이다. 신앙이라는 것이 남한 사회에서 기독교의 전유물이라는 나의 상식 때문에 이것이 상식의 오류 일 수도 있지만 이런 단편적인 생각들이었고 일단은 과제의 주제에 맞게 서술해 나가도록 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월 프레드 켄트웰 스미스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260페이지의 책을 읽었고 현대종교학 담론에 나오는 학자들은 대부분 4페이지 안이라는 점에서 왜곡된 상식을 가질 수 있겠다는 의심이 든다. 스미스는 260여 페이지에 자신의 주장에 대한 온갖 예와 논증들로 가득차 있고 현대종교학 담론에 나오는 학자들은 자신이 쓴 글도 아니고 자신과 별 관련 없는 심지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자신과의 대화 한마디 없이 자신의 주장을 4페이지 심지어 1페이지로 압축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서술하는 월터캡스의 입장이 철저하게 받아들여진다는 점에서 자신의 의도와 관련 없이 충분히 자신의 입장이 전달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개인적인 바램은 현대 종교학 담론에 관한 데카르트나 칸트, 맑스의 평론을 듣고 싶다.
결국에는 내가 잘못된 비판의식만 잔득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고민을 한다.
루돌프 오토 : “거룩함”의 핵심
오토는 종교의 필수 불가결한 그것을 찾으려고 하는 대표적인 학자 중에 한 명일 것이다. 일한 문제의식은 윌프레드 켄트웰 스미스와는 약간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종교의 의미와 목적’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오토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오토는 거룩함의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다. 신에 대한 인간이해에 대해 합리적인 부분이 가지고 있는 한계성을 지적하면서 그가 비합리적인 부분을 거론하면서 보다 참된 종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스미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부분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먼저 합리적인 부분은 스미스가 말하는 축적적 전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축적적 전통이라 하는 것은 우리가 종교사에서 역사적으로 관찰 될 수 있고 서술 될 수 있는 부분을 말한다. 종교의 합리적인 부분도 이렇게 관찰 될 수 있고 서술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오토의 지적처럼 해석적, 이성적 테두리고 관찰을 하게 되면 그것은 종교를 이해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왜곡의 가능성을 주장한다. 특히 오토가 슐라이어마허를 비판하면서 나온 계몽주의적 패러다임이 남겨 놓은 지식, 행동, 감정의 세 가지 범주적 가능성의 맥락에서 하는 설명을 거부하고 그러한 것들은 아마 지적/분석적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보다 일종의 또 다른 범주의 가능성을 한다는 데에서 그 의의가 있다.
그렇기에 기존의 종교를 이해하는 패러다임에서 그 접근방법에 있어서 오토의 영향력은 무시 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마치 큰 원을 채우기 위해 기존의 삼각형으로 채우려 했다면 오토의 경우는 삼각형으로 채우고 그 남은 부분을 즉 ‘잉여’하는 부분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 것이다. 여기서 스미스의 문제의식의 차이가 나타난다. 스미스는 나타나는 원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다각형의 도구가 아닌 바로 그 원 안에 있는 것을 보려는 것이다. 그 원안을 보려는 시도를 통해서 다양한 종교전통이 존재하는 현 상황에서 보다 포괄적인 접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토가 말하는 것 ‘잉여’라는 부분은 결국은 거룩함이라는 것으로 귀결이 되는데 이는 일종의 매혹적인 두려움이며 절대의존의 감정이다. 이러면서 오토는 스미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스미스가 주장하는 서양에서의 종교문화에서 그 근저를 이루는 것과 스미스의 표현에 의하면 타 문화권에 종교문화에 근저를 이루는 신앙이라는 측면에서 이 둘을 비교해 보았을 때 오토가 말 하는 것은 전체적인 관점이 아니다. 즉 하나의 요소로 거룩함이라는 것을 주창하는 것이고 그렇기에 거룩함이라는 것도 매우 협소한, 일종 좁은 해석의 틀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기에 오토는 진화론적 접근에 빠져 기독교 중심적인 서술을 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기독교가 고등발전이라 함은 바로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것의 다양한 요소들-앞에서 설명한-의 동시다발적인 성장인데 그러한 접근 방법은 현재 다종교 상황에서 그리 걸맞지 않은 설명이다.
보다 포괄적인 접근 방법에 있어서 전인적이고 인격체 신앙을 통해서 종교를 구성하고 있는 그 구조를 파악함으로서 현재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교전통을 이해 할 수 있다. 바로 오토의 설명은 이러한 점을 스스로 간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 필수 불가결한 것의 반전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기존의 종교에 대한 필수불가결한 것을 찾으려는 시도에 일단 과연 종교의 본질이 실재 할 수도 있지만 포이어바흐의 이야기는 그것이 상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종교라는 것과 신앙이라는 것의 관계가 약간은 모호 할 수 있다. 포이어바흐는 종교를 스미스가 말하는 축적적 전통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개별 종교전통을 가지고 살면서 개인의 신앙을 비판하는 것인지 일단은 두 양자의 차이가 모호하다.
중요한 것은 포이어바흐가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 할 수 있다. 일종의 자연과 의식을 포이어바흐는 분리하고 있다. 종교라는 것은 인간의 의식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것은 일종에 스미스가 말한 것 즉 인간의 신앙이 역사적으로 발달함에 따라 일종의 축적적 전통으로 나타난 것과 관련이 깊다. 그러나 포이어바흐가 말하는 의식과 스미스의 신앙은 다르다. 포이어바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라는 것은 인간 의식의 산물이며 이 의식은 자연에 의한 일종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