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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의 이해 서평 - 한홍구, 『대한민국史』4, 한겨레출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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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현대사의 이해 서평 - 한홍구, 『대한민국史』4, 한겨레출판, 2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한국현대사의 이해 기말과제 - 서평
한홍구, 『대한민국史』4, 한겨레출판, 2006
고등학교 3학년 때 근현대사 선생님 책꽂이에는 『대한민국史』시리즈가 모두 꽂혀있었다. 나는 당시 그 책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예전에 인터넷에서 국방부가 선정한 불온서적이었다는 것이 생각나 무심코 그 말을 선생님께 했다. 선생님께서는 순간 정색하시며 ‘어떻게 이 책이 불온서적이냐’고 나에게 반문하셨다. 그 이유는 책을 읽지 않은 내가 알 턱이 없었다.
나에게 한국 현대사는 언제나 어두운 이미지로 비추어졌다. 학교에서 근현대사를 배우면서, 일제강점기 36년 동안의 역사도 배울수록 안타깝고 절망적이었는데 해방이 된 후에의 역사는 더 숨이 막혔다. 지금 내가 편안히 살고 있는 것이 과연 ‘진짜’인가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한국 현대사는 어둡고 삭막했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폭력의 실상에 대해 배우면 배울수록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낯설게 느껴졌다.
『대한민국史』시리즈 4권의 책 중 마지막 권을 고른 이유는 이 책의 머리말을 보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史는 희망의 역사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머리말에는 저자의 의도가 잘 드러나 있다. 여전히 많은 문제점들과 갈등을 안고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싶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다. ‘어쩌면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드물지만 감동과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을 저자 나름대로 엮어 내지는 않았을까’라는 기대감도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머리말을 잘못 이해한 것 같아 다시 들춰보기도 했다. ‘우리에게 미국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대한민국 주권에 대한 문제에서부터 시작하여 국가보안법으로 얼룩진 대한민국 역사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도중에, 도대체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덮는 순간까지 우리나라는 여전히 문제투성이라는 느낌만 줄 뿐 끝머리에서조차 희망의 메시지는 찾을 수 없었다. 저자의 의도는 지금까지는 어두운 역사였지만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희망을 품어도 괜찮다는 의미에서 한 말인 것인가 생각해 보았다. 저자는 누구에게 대한민국의 역사는 희망의 역사라는 것을 알려 주려 한 것일까 고민해 보기도 하였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우리의 정당한 분노가 힘의 원천이 되기를 바란……’이라고 적고 있다. 분명 지금의 2, 30대들은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겪지 않았다. 그래서 절망적이지만 꼭 알아야 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 더 나은 사회를 열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어떠한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배우면 국가의 폭력에 의한 시민들의 숱한 희생부터 시작해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회 도처의 여러 가지 문제점까지 화가 나고 때로는 절망적이기도 하며 환멸감까지 생기게 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문제는 그러한 분노 후의 결과이다. 그 분노가 세상에 대한 환멸감으로 완전히 전환하여 오히려 현재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심을 끊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내 생각에는 이것은 저자가 바라는 상황이 결코 아니다. 분노 앞에 ‘정당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으로 보아서 그 분노는 올바른 방향으로 표출되어야 한다. 예컨대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은 우리가 유권자로서 각자 갖고 있는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회에 관심을 갖고 깨어 있는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아니면 저자는 우리가 대한민국의 그늘진 역사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폐되고 왜곡된 사실은 결국 잊혀져서 나중에는 해결 불가능한 상황으로까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이 책이 시리즈의 마지막 권이므로 맺은 말을 써 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는 검게 그을려 있기도 하고 피로 물들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희망을 갖고 내일을 준비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저자의 생각과 의도를 남겼더라면, 이 책을 읽고 난 사람들이 나처럼 어디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헷갈리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역사는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에는 누군가의 권력 남용으로 인해 은폐되고 왜곡된 정보도 상당히 있다. 광주 민주 항쟁에 대한 가해자처벌과 피해자 보상이 상당히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그에 대한 실상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시기상 가까운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진실을 밝히지 않거나 남아 있는 기록이 부족한 경우도 있다. 이 책의 제3부, ‘기억하지 않는 자와 고백하는 자’에서 저자는 ‘나는 지금 고백을 기다린다.’라고 외친다. 그것이 국가폭력을 유산으로 물려주지 않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고백하면 무엇이 달라지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고백이 과연 최선의 방법인지 생각해 보았다. 사례로 나온 김근태의 고백처럼 오히려 자기 양심을 지키기 위해 한 고백이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이대로 끝까지 입을 다문다면 자신이 지은 죄는 아무도 모르게 묻힐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제발 양심을 저버리지 말라고 애원하기도 한다. ‘무엇을 위한 고백인가?’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고백은 상처받은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치료제라고 말한다. 자료를 통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어마어마한 보상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상처를 준 이의 고백보다 상처를 받은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아직 가해자들이 숱하게 살아 있다는 점에서 저자는 고백의 가능성에서 희망을 찾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들의 대부분은 자신의 양심을 팔고 누구보다 ‘있는 사람’으로서 살고 있다. 안타깝지만 저자가 바라는 ‘고백의 문화’는 아직 멀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들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피해자들은 그날의 고통을 고백하는 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 우리 사회가 양심 있게 고백하는 자들을 매도하는 분위기를 형성해서는 안 된다. 고백이 죄를 덮어줄 수는 없지만 우리 사회가 그러한 고백을 너그럽게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과거 청산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백이 이루어지리라는 희망 보다는 먼저 그러한 고백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리라는 희망을 갖는 것이 더 실현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 청산의 문제들 중 특히 골치 아픈 것은 국가 권력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들이다. 대부분의 문제들이 국가 권력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에서는 국가보안법 문제를 거론했다. 국가보안법은 그 당시 이 법을 발의한 의원들도 남용될 까봐 걱정한, 결코 올바르지 못한 법이다. 이미 폐지되었어야 옳지만 한반도가 여전히 분단국가라는 이유가 크게 작용해서인지, 국가보안법은 질긴 생명을 유지해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국가보안법의 본질을 ‘합리적 의심을 가로막는 폭력’이라고 말한다. 이 법은 이성적인 의심을 하는 것을 막고 정부의 말은 무조건 믿어야 하며, 북한은 우리의 불구대천의 원수이기 때문에 사회주의적인 생각을 하거나 현 미국식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죄를 지은 후에 형벌을 내린다는 원칙에 어긋나는 국가보안법이 법치주의 체제이며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예비’의 ‘예비’까지 불법으로 간주하는 이 법은 이미 무고한 사람들을 적색분자로 몰아 희생시켰다. 평소에 현대사에 관심을 갖고 여러 책을 읽으며 공부했지만, 국가보안법이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는커녕 별로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이 책에 나와 있듯이 국가보안법은 어쩌면 누군가의 철밥통을 위해 어두운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그 생명력을 유지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의 역사가 희망의 역사라는 말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2부에 나와 있듯이 억압의 시대 속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책을 통해 표출하고 한국 현대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선생님들의 ‘묻지마, 다쳐!’를 뿌리치고 현대사를 연구했던 사람들은 ‘현대사 공부가 나라를 비하하기 위한 것인가.’라고 묻는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현대사 연구나 소위 그들이 말하는 ‘불순한 이론’에 대한 연구를 막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금서를 돌려 보고 각자 출판사를 냈던 사람들은 과연 나라를 비하하기 위해 그런 일을 한 것일까? 그런 의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현대사는 어둡고 우울하지만 한편으로는 희망이기도 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용기를 갖고 저항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희망을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주는 부분은 1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강행처리해 국회가 파행을 겪고 있는 현 시점에서 1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 특히 책을 읽기 전까지는 1부의 소주제 중 ‘대원군이 노무현보다 나은 이유’라는 말이 다소 거슬렸다. 대원군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로 나뉘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쇄국정책으로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인식이 강한 대원군이 한미 FTA를 체결한 노무현 대통령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근본적인 이유는 대원군의 쇄국정책에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깊숙이 박혀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1부를 읽고 내가 정말 정부와 언론이 원하는 대로 믿고 그들에게 놀아난 것은 아닌지, 심각한 고민이 생겼다.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이 대개 자기들의 이익을 먼저 챙기려 한다는 것은 익히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끌 수도 있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 기막혔다.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 추진되었던 한미FTA도 ‘퍼주는 식’이라고 비판했는데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미FTA는 저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