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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자유민주공화국 섬머힐 학교 감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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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이들의 자유민주공화국 섬머힐 학교 감상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아이들의 자유민주공화국 섬머힐 학교』감상문
- 한국의 교육과 섬머힐 학교의 교육 -
한국사회에 있어서 교육이라고 하면 무엇을 떠올릴까? 무엇보다 입시지옥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입시지옥은 자원이 없는 대한민국에게 있어서 교육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의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더욱 심화된 형태로 엘리트주의로 이행되면서 학생들을 진정한 학문의 길이 아닌 성공 수단으로서의 학문의 길을 걷도록 하고 있다.
한국교육은 이런 엘리트 양성을 위해 맞추어진 교육과정의 틀에서 학생들을 가두어 놓고 있다. 어른들의 지나친 성공에의 집착이 자식세대들에게까지 영향을 주어 그들은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는 정답만을 적어내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것이 왜 정답인지는 중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그것이 정답이라고 하기에 그것을 정답으로 알고 있는 이러한 학생들의 수동성 속에서 우리사회는 더욱더 학생들을 그저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 런던에서 150km 떨어진 레이스턴의 숲에 자리잡고 있는 섬머힐 학교는 우리 교육과는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섬머힐 학교에서 학생들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학교를 관리하는 주체였다. 즉, 학교의 주체는 학생이라는 말이 실제로 실현되고 있는 곳이다. 또한 교육과정의 틀에서 정해진 답이 존재하는 우리 교육과는 달리 섬머힐 학교의 교육은 정해진 답이 없었다. 그들은 자연의 변화와 상황의 변화, 그리고 서로 다른 차이점에서 답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체험하고 있었다.
섬머힐 학교는 설립자 니일의 철학에 따라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이념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이런 자유는 교사도 침해해서는 안되는 권리다. 섬머힐 학교의 자유는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는 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지나친 자유가 오히려 그것이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을 나 또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섬머힐 학교의 모습이 한국의 학부모와 교육 여건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학생의 자유에 관한 측면을 적극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실제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영향을 주는 내부 사안들이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단순히 교장과 교사의 권위적 결정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의견은 단순히 "어린 것들이 무엇을 안다고.."라며 취급을 받으며 무시된다. 또는 "다 너희들 잘되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무시와 수동성 속에서 더 이상 학생들은 민주적 주체로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한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되고 그저 어떤 사안에 있어서 분위기에 휩쓸려 결정하게 된다. 즉, 자신의 끊임없는 탐구에 의한 것이 아닌 단순히 따라하기를 하는 것이다. 이런 따라하기의 결과물에 대해서는 다시 남탓을 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교육의 민주적 과정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고 더 나아가 사회의 민주적 질서도 위협을 받게 된다.
그러나 섬머힐 학교에서 우리는 학생이 주체가 되어서 민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서 교사 또한 주체가 된다. 다만 교사와 학생이 동등한 주체라는 것이 한국의 교육 또는 기존의 교육과는 다른 점이다. 이런 동등함은 학생들을 더 날뛰게 하고 통제할 수 없게 만드는 걸까? 섬머힐 학교의 모습을 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섬머힐 학교의 교사와 학생간의 동등함은 오히려 인격적인 관계를 가깝게 함으로써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게 되고, 어떤 학교 내부의 쟁점 사안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총회에서 결정된 사안이 어느 한 주체의 일방적인 권위에 따른 구속력이 아니라 전체의 권위에 따른 구속력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이는 흔히 법의 권위와 비슷한 성질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전체의 권위 속에서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 학생 개개인은 그것을 존중하고 수용한다. 물론 부분적으로 그것이 분할지도 모르지만, 섬머힐 학교 학생 하나하나는 총회의 결정에 승복한다. 이런 승복에서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더 나은 방향이 무엇인지 모색하게 된다.
"더 나은 방향" 즉, 좋은 행동은 가르칠 수 없는 것이고 스스로 습득하는 것이다. 이는 니일의 철학이다. 스스로 습득하고 그것을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때 진정으로 성공적 인간이며 민주적인간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은 이러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교육현장은 좀 더 학생의 입장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학생회를 통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직접적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그것을 어떤 일이 있어도 배제할 수 없도록 해야한다. 학교 당국자들은 그것을 양보한다고 여겨서도 안된다. 그것은 본래 학생에게 주어져 있던 자유에 따른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며 본래부터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것을 양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한국의 교육이 그만큼 권위적이며 보수적이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이제부터는 스스로 습득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학생은 스스로 습득하는 과정 속에서 여러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섬머힐 학교는 이런 시행착오를 중요시하였다. 그것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떠오르듯이 시행착오를 통해서 자기성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섬머힐 학교는 자유속에서의 자기성찰과 적극적인 자기표현 등은 험난한 사회를 살아가는데 필요한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는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가 인정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자유는 혼란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조절을 가능하게 하는 계기이고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원동력이다. 바로 이런 원동력이 한국의 교육현장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교육관계자들의 임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