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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도덕교육론 -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윤리와 초등도덕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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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초등도덕교육론 -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윤리와 초등도덕교육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윤리와 초등도덕교육
1. 주제 선택 동기
최근 신문을 보면 과연 이런 일들이 일어날까 싶은 정도의 반 인륜적인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만큼 도덕교육, 인성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중, 고등학생 때 겪는 학습 경쟁의 연령이 점차 어려져 근래의 초등학생들은 인성 측면의 성장보다도 좋은 학습능력을 갖기를 요구 받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사회에서 몰상식하고 무지각한 행동을 한다는 말을 ‘개념없는 초딩’이 대신하고 있다. 물론 초등학생은 나이가 어린 만큼 인성적으로, 이성적으로 성장이 덜 되었다. 하지만 ‘초등학생 집단 성폭행 미수’처럼 최근에 접할 수 있는 초등학생과 관련된 이슈들을 보면 어리다는 이유로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밖의 문제들이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초등학교 현장에서 도덕교육을 여러 가지 이론 아래 다양한 방향으로 제시할 수 있지만 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와 중용을 선택하였다. 칸트의 이론의 경우 물론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지나치게 절대적이고 엄정한 기준이 적용되기 때문에 현실성이 다소 떨어진다. 또한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도덕교육을 바라보자면 이성적 판단 근거 아래 기준이 세워지지만 단지 다수가 동의 했다는 이유로 그것이 정당화 되는 문제가 있다. 반면, 흄은 인간의 감성적 측면을 중시하지만 감성적이며 공감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 판단은 사람의 주관마다 달라질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이 객관적으로 옳지 못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허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이론들이 난점을 가지고 있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덕 윤리와 중용을 이용한 방향의 도덕교육이 필요 하다고 생각한다. 앞에 제시한 관점들이 이성과 감정을 대립한다고 평가하는 반면 그는 양쪽 모두를 포용하고 오히려 ‘정념’이 이성에 어떻게 관련되어 지고, 이성에 의해 정념이 어떻게 작용되느냐에 따라 도덕적 판단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것을 통제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편 그의 도덕윤리를 한 마디로 정리 하자면 상대적이지만 객관적이다. 문제 상황을 맥락에서 파악하기 때문에 상대적이지만 문제를 개인의 주관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은 과거 우리의 도덕 교육이 다소 피상적이고 이론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그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스스로 기준을 세워보고, 방안을 교육을 통해 꾸준히 습관화하며 훈련을 하므로써 덕 혹은 선(최고 목적)을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초등학생처럼 아직 인성적 발달이 부족한 학습자들에게 이론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보다 직접 여러 가지 상황들을 제시하고 문제의 방안을 다양하게 모색하여 평가해보는 것은 현 도덕 교육이 가지고 있는 오명을 벗어날 수 있는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 사상
1) 목적의 종류와 목적론적 세계관
아리스토텔레스는 알기 쉬운 실례를 들어 자신의 윤리학을 위한 틀을 마련하였다. 모든 행동은 목적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던 그는, 목적을 두 종류로 구분하였다. 하나는 ‘도구적’ 목적(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행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본래적’ 목적(그 자체를 위해 수행되는)이었다. “전쟁과 관련되어 이루어지는 모든 행동”은 이 두 종류의 목적을 잘 예증해 준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가 어떤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동을 단계적으로 고려할 때, 우리는 일련의 특수한 행위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행위들은 나름대로의 목적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그것들이 완성되어 있을 때에는 결국 다른 목적들을 위한 수단이 될 뿐이라는 것이다.
우선 말고삐 제작자의 기술을 살펴보면, 말고삐가 완성된 것으로 제작자의 목적은 실현된 것이다. 그러나 결국 말고삐는 전투에서 말을 달리는 기마병을 위한 수단이 될 뿐이다. 이와 유사하게 목수도 막사를 건축하는 작업을 끝냈을 때 목수로서의 기능은 실현된 것이라 할 수 있으나 그 막사의 경우도 그것이 병사들을 위한 안전한 주거를 제공해 줄 수 있다면, 막사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실현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 경우에 목수와 건물에 의해 달성된 목적들은 그 자체로서의 목적이 아니라 도구적인 것이다. 즉 병사들이 그들의 다음 행동 단계로 이동해 갈 때까지 병사들에게 주거를 제공해 주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한편 배를 만드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배를 출항시키는 것으로 그 사람의 목적은 실현되지만 이 역시 군인들을 전장으로 수송하거나 전투를 수행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장군들은 전투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하지만 전투는 평화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렇다면 평화가 전쟁의 진정한 목적일까? 그렇지 않다. 평화란 인간이 ‘인간답게’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조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목수나 의사나 장군으로서의 인간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인간이 추구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며, 그때 우리는 모든 다른 행동을 수단으로 삼는 데에 도달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행동이 “인간이 선(善)임에 틀림없다”고 단언한다.
“선”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선”이라는 단어를 어떤 사물의 특수한 기능과 연결시켰다. 망치의 경우, 어떤 망치가 선하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망치들에 대해 기대하는 기능을 그것이 충실히 수행했을 경우이다. 만일 목수가 건축자로서의 자신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면 그 목수는 선하다. 이는 모든 기술들과 직업들에 공히 적용되는 기준이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보편적 사항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인간의 기술이나 직업을 인간으로서의 그의 기능과 구별하였다. 즉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이 지향해야 하는 선을 발견하기 위해 인간 본성의 기능을 판명하게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선한 인간이란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2) 최고선으로서의 행복과 덕
인간의 행동은 그것에 적합한 목적을 지향해야 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믿었다. 이러한 목적들은 비록 가치는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 지향해야 하는 선을 결코 달성할 수 없다. 궁극적인 목적이 되기 위해서 하나의 행위는 “자족적”이며 “최종적”이어야 하는데, 그러한 행위는 “항상 그 밖의 다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바람직한 것이며”, 그것은 또한 인간에 의해 달성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마도 “행복”이야말로 인간 행위의 궁극적 목적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이라는 사실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는 쾌락이나 부나 명예를 추구할 때 “그것들의 도구성을 통해 우리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행복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선”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선과 마찬가지로 행복도 인간에게 고유한 기능의 수행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행복이란‥ 영혼이 미덕의 실현으로 작용하는 것”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