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머신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

 1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1
 2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2
 3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3
 4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4
 5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5
 6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6
 7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7
 8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8
 9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9
 10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10
 11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11
 12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12
 13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13
 14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1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양반의 처첩갈등 -`사씨남정기`, `인현왕후전`을 통한 처첩갈등의 재조명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조선시대의 처와 첩
1.1. 조선시대의 처첩질서(妻妾秩序)
1.2. 처(妻)의 확고한 위치와 부부의 협력
1.3. 고전에 형상화 된 처와 첩
1.4. 본 조의 발표

2. 김만중 -『사씨남정기』
2.1. 『사씨남정기』의 작가 김만중
2.2. 『사씨남정기』의 줄거리
2.3. 『사씨남정기』에 대한 선행 연구

3. 작자미상 -『인현왕후전』
3.1. 『인현왕후전』작품소개 및 줄거리
3.2. 『인현왕후전』에 나타난 당시의 시대상
3.3. 『인현왕후전』에서의 처의 입장
3.4. 『인현왕후전』에서의 첩의 입장

4. 첩(妾), 현대적 관점으로 재조명하다.
4.1. 『사씨남정기』- 오늘날의 입장에서 본 ‘첩(妾)’
4.2. 현대의 관점으로 본 『인현왕후전』


본문내용
1. 조선시대의 처와 첩

1.1. 조선시대의 처첩질서(妻妾秩序)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여러 명의 처를 두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조선을 건국하면서부터 위정자들은 고려시대까지의 제도적 문란을 유교사상을 도입하여 정리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 건국 후 조선의 위정자들은 유교사상에 기반을 두고 적처와 첩을 구분하여 처첩질서를 명확히 하려는 정책을 꾸준히 펴 나갔다.

이러한 정책은 실제로 첩이 되는 여성의 신분이 적처에 비해 낮았기 때문에 사족신분계층을 옹호하려는 신분관념의 도움을 받아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처첩질서를 확립하도록 하는 정책에 이러한 신분사상이 가미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첩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자손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쳐 첩은 신분에 결함이 있는 존재로 분류되어 가계 계승이나 관직진출에 있어서 소외되었고, 재산상속에 있어서도 불이익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적처와 첩을 구분하고 처첩질서를 세우려는 정책은 가정 내에서의 유교적 질서를 수립하려 하였던 측면이 강하였고, 이를 다스릴 권한은 남편에게 있었다. 따라서, 남편이 이러한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고 처를 함부로 버리거나 처첩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는 남편에게 형벌을 가하였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처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 만한 행위를 하였을 경우에 제가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남편이 처벌받기도 하였다.

첩은 정처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위치에 놓여 있었다. 첩은 노동력을 제공해야한다는 점에서 노비와 동급으로 취급되기도 하였고 정처인 사대부 여성의 인격과 대우에 따라 그의 처지가 결정되는 존재였다. 첩은 사대부 여성의 부덕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첩 자신이 주체적 인격체로 인정되고 그들의 삶의 이력이 기록되어 전하는 경우는 매우 적었다. 반면, 사대부 여성들은 첩을 도덕적으로 규제하며 첩의 존재를 수용하였다.

1.2. 처(妻)의 확고한 위치와 부부의 협력

조선시대의 부부는 의외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은 국가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다. 조선은 사회 운영의 상당 부분을 가족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가족의 안정은 절대적인 과제였고, 국가는 부부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또한 부인과 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은 곧 적처 집안과의 관계가 소원해 진다는 것을 뜻했다. 조선 시대 혼인에서 적처의 집안, 즉 여자 집안의 영향력은 컸다. 조선 전기에는 물론 여자 집안의 영향력이 막대했고, 조선 후기로 가면서 남자 집안 주도형으로 혼인 형태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여자 집안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니 어차피 여자 집안과 공조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회라면, 관계를 우호적으로 유지하면서 사회적으로 공동 이익을 얻는 게 더 현실적이었다.

현대인들은 흔히 집안간의 정략결혼으로 갈등이 심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혼인이 개인 의지가 아니라 집안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조선의 부부를 더 심한 갈등 관계에 놓이지 않게 했다. 부모는 충분히 숙고한 끝에 환경이 비슷한 사람과 혼인을 맺어주었다. 부부는 문화적 배경이 유사했고, 근대 이후처럼 개인적인 감정 대립으로 갈등하는 경우가 적었다.

참고문헌
1. 단행본
김만중, 구인환 역(2002), 『사씨남정기』, 서울: 신원문화사.
김병국, 『서포 김만중의 생애와 문학』, 서울대학교출판부.
김연숙(2002), 『고소설의 여성주의적 연구』, 서울: 국학자료원.
이순구(2011), 『조선의 가족, 천개의 표정』, 너머북스.
李昇馥(1995), 『妻妾葛藤을 통해서 본 家庭小說과 家門小說의 關聯 樣相』, 서울대학교 대학원.

2. 논문
김두헌(2000), 「조선후기 중인의 庶流 및 첩에 대한 차별」, 『조선시대사학보』, 조선시대사학회.
김은숙(2004)「『인현왕후전』과 『사씨남정기』에 나타난 여성 인물의 현실 대응 양상 연구」,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이수빈(2010), 「인현왕후전과 사씨남정기의 비교 연구」,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황수연(2006), 「조선후기 첩과 아내 : 은폐된 갈등과 전략적 화해」, 한국고전여성문학회.

3. 인터넷 자료
두산백과사전//www.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