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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정책사례분석] 정책과정상의 참여자와 갈등 -한약조제권 분쟁 과정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
Ⅱ. 한약조제권 분쟁의 개관
1. 배경
2. 한약조제권 분쟁 - 약사법 개정안
3. 연구범위 한정
4. 갈등관리론-집단이기주의와 이익집단 및 갈등
Ⅲ. 한약조제권 분쟁과정에서 참여집단
1.공식적 집단
1) 보건사회부
2) 의회
3) 헌법재판소
2. 비공식적 집단
1) 대한약사회
2) 대한한의사협회
3) 시민단체 - 경실련
4) 정당
5) 언론
Ⅳ. 한약조제권 분쟁의 정책결정과정과 핵심쟁점
1. 한약조제권의 정책결정과정과 참여자
1) 제 1단계 : 이익갈등의 발생과 분쟁의 격화(1993년 1월-6월)
2) 제 2단계 : 정부개입에 의한 분쟁해결 시도(1993년 6월-9월)
3) 제 3단계 : 경실련의 개입과 분쟁의 조정(1993년 9월-12월)
4) 향후 전개과정 ( 2007.5~ )
2. 갈등의 영역과 핵심쟁점
1) 제 1단계 : 이익갈등의 발생과 분쟁의 격화(1993년 1월-6월)
2) 제 2단계 : 정부개입에 의한 분쟁해결 시도(1993년 6월-9월)
3) 제 3단계 : 경실련의 개입과 분쟁의 조정(1993년 9월-12월)
3. 협상과정상의 문제점
Ⅴ. 한약조제권 분쟁과정의 시사점과 정책적 함의
1. 시사점
2. 정책적 함의
Ⅵ. 결
본문내용
2) 제 2단계 : 정부개입에 의한 분쟁해결 시도(1993년 6월-9월)
제 2단계는 1993년 6월 보사부가 분쟁해결을 시도하기 위하여 분쟁위원회를 설치한 시기부터 9월 정부가 제시한 약사법 개정안에 대한 한의사회와 약사회의 반발과, 수천명에 달하는 한의대생의 집단유급이라는 새로운 사회문제가 발생한 시기까지 이다.
6 월 30일 보사부가 '한약분쟁 해결을 위한 약사법개정추진휘원회'(약개추)를 발족하여 분쟁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한약분쟁은 본격적으로 정부의제로 전환되었다. 한의사회는 약개추의 인적 구성이 약사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로 불참하다가 7월 13일 제2차 회의부터 참여하였다.*3) 그러나 7월 21일 제 3차 회의에서는 약사법 개정이 의약분업 쪽으로 초점이 모아지자, 7월27일부터 한의대생들이 또다시 수업거부에 들어갔다. 수업거부는 유급을 낳고, 이것은 한의과대학을 지원하려는 수천 명의 대학입시생에게 장애가 되었기 때문에 커다란 사회적 파문이 되었다. 8월에는 보건전문가, 의사, 시민단체는 공청회, 간담회, 성명서 등을 통하여 각자의 의견을 표출하였다. 8월 말 유급위기가 가까워지자, 한의대생의 학부모들이 나서서 반발하였고, 한의과대학 보직교수들도 사직서를 제출하였다. 한편, 그 동안 잠잠하던 약대생들도 9월 1일부터 수업거부에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9월 3일 보사부는 6차에 걸친 약개추 회의와 한 차례의 공청회에 근거하여, 약사법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 개정안에 대하여 약사회, 한의사회, 시민단체 모두 반대하고 나섰고, 언론도 정부의 중재능력에 회의적이었다. 약사회는 개정안이 한약 미취급 약사 및 약대학생에게 불리하고, 약사법상 의약품에 대한 조제권을 갖고 있는 약사에게 한약조제를 소급적으로 규제하므로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한의사회는 약사를 분업의 상대방으로 하는 한방의약분업과 일정한 검증도 없이 기존 약사의 한약조제권 인정을 용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개정안을 반대하였다.
정부의 중재노력이 실패로 끝나자 정부, 한의사회, 약사회간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었다. 9월 4일 전국한의대교수협의회는 사직서 제출을 결의하였고, 약사회는 면허증 반납과 집단 폐업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한의사회와 약사회 회원 수만 명이 동시에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시위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에 대하여 정부는 9월 4일 대통령의 '자기 몫만 주장하는 집단 용납 불허'경고이후 9월 6일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관계 장관회의에서 집단행동에 대한 강경대응 원칙을 세웠고, 9월 7일에는 사태악화의 책임을 물어 보사부 차관을 경질하였다. 그리고 9월8일 보사부 장관은 정부 개정시안의 입법추진 및 집단행동에 대한 강경대응이라는 담화를 발표하고, 9월 14일에 약사법 개정 법률안을 입법예고 하였다. 그러나 약사회는 보사부와 한의사회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성명 및 신문광고와 함께 궐기대회를 개최하였고, 한의사회도 보사부 항의방문과 함께 전국한약관련학과협의회, 대한 한약협회, 전국한의대학부모협의회 등과 한의학 수호 결의대회를 갖고 '한의학 살리기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9월 17일 문교부가 한의대생 2,153명의 유급을 확정하자, 갈등상황은 심각한 국면으로 치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