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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성기호설, 김정희의 금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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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정약용의 성기호설, 김정희의 금석학
※정약용의 성기호설
1. 성기호설의 정의
“성이란 마음 기호하는 것이고 내 마음이 좋아하는 것이다.” 이천승, 이회평, 강필선,『「실학의 집대성-다산 정약용」,『한국 실학 사상』,권2, 39쪽
『맹자요의』에서 공맹은 이미 기호로서 인성을 증명하였다는 전제하에, 정약용은 성은 기호를 의미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맹자는 성(性)에 대해 논할 때에 반드시 기호(嗜好)로 말하였다. 그 말에 이르기를 “입이란 맛에 있어 즐기는 것이 같다, 귀는 소리에 대해 좋아하는 것이 같고, 눈은 색에 대해 기뻐한 것이 같다’고 한 것은 모두 성이 선(善)에 대해 좋아하는 것이 같음을 밝힌 것이니, 성(性)의 본의가 기호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천승, 이회평, 강필선,『「실학의 집대성-다산 정약용」,『한국 실학 사상』,권2, 32쪽
성기호설의 기호(嗜好)란 글자 그대로 무엇을 좋아하는[好] 것이다. 좋아함의 근거에 따라서 형구(形軀)의 기호와 영지(靈知)의 기호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형구의 기호란 육체[人心]의 기호이고 영지의 기호는 마음[道心]의 기호이다. 따라서 사람에게는 항상 두 가지 의지가 대립하기 때문에 인심, 도심의 교전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맹렬하게 살피고 힘써 이겨야 도에 가까워진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도에서는 최종적 판단능력인 자주지권(自主之權)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철학사연구회,『한국 실학 사상사』, 다운샘, 2000, p.269 참조
2. 성기호설의 선(善)지향성
“인성이 반드시 선을 좋아하는 것은 마치 수성(水性)이 반드시 아래로 흐르기를 좋아하고, 화성(火性)이 반드시 위로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것과 같다. 삶을 부여한 처음에 하늘이 이 성(性)을 명해주었으므로, 그 본성은 변함없이 충신 효자를 보면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은 그가 선하기 때문인데 온 나라의 사람이 다 같으며, 탐관오리를 보면 모두 미워하는 것은 그것이 악하기 때문인데 온 나라의 사람이 다 같다. 이것이 이른바 성선(性善)이다.” 『孟子要義』권1, 33쪽
즉 정약용은 악행을 일삼은 자라 할지라도 인간의 선행을 보면 아름답게 생각하고 악행을 보면 미워한다는 것에서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 지향적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약용이 성을 마음이 기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근본적인 입장을 발견할 수 있다. 기호는 단지 인간이 좋아하는 경향성일 따름이며, 선을 선택하여 행위에 옮기는 것은 마음이다. 그런데 인간은 본질적으로 선(善)지향적이기 때문에 마음이 기호(嗜好)한다는 것은 곧 마음이 호선오악(好善惡惡)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호범,『儒學과 丁若鏞의 哲學思想』,ksi한국학술정보(주), 2004, p.70 참조
다시 말해 정약용은 사람의 성은 선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인간의 성은 선하다’는 형이상학적 명제는 정약용에 의해서 ‘인간에게는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기호(嗜好)가 있다’로 좀 더 실증적인 명제로 바뀌어 진다. 예를 들어 ‘효행은 선하다’는 뜻은 ‘사람들은 효행을 좋아한다’는 것에 의해 정당화된다. 즉, 사람들이 효행을 좋아하는 까닭은 효행이 선함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호선오악의 기호가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인간은 선천적으로 선악을 아는 기제가 있다’는 것이 성립되며, 이는 다시 ‘인간의 성은 선을 향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성은 선하다’라는 주장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정소이,「정약용의 도덕 인식론」,『다산 사상의 철학적 조명』,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2012,p.62참조
3. 성기호설의 자주권
마음과 형체가 선악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이 문제는 정약용의 성기호설(性嗜好說)을 이해하는 중요한 관건이 된다. 그는 종래 성을 이해하는 관점이 잘못되어 있음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방호범,『儒學과 丁若鏞의 哲學思想』,ksi한국학술정보(주), 2004, p.89 참조
“본심의 전체적인 쓰임을 논하면, 선(善)도 할 수 있고 악(惡)도 할 수 있는 이치가 있으며, 선을 하기가 어렵고 악을 하기는 쉬운 형세가 있으니, 이는 성품이 아니다. 양웅(揚雄)은 선을 할 수도 있고 악을 할 수도 있는 이치가 있다고 하여 성혼(性混)이라 했고, 순경(荀卿)은 선을 하기는 어렵고 악을 하기는 쉽다 하여 성악(性惡)이라 했는데 이들은 모두 성품 아닌 것을 성품으로 여긴 것이다.” 『시문집(詩文集)』
그의 설명에 따르면 양웅(揚雄)과 순자(荀子)는 인간이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을 할 수도 있는 이치와 선행은 어렵고 악행은 쉬운 형세를 성(性)이라고 파악하였지만 이는 모두 성(性)이 아니다. 인간의 성(性)은 마음의 기호일 뿐이어서 선악이란 도덕적 판단과 실천을 주도하는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정약용은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고 선택하며 실천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악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이러한 마음의 기능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한다. 방호범,『儒學과 丁若鏞의 哲學思想』,ksi한국학술정보(주), 2004, p.9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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