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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위클리프 얀 후스 에라스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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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존 위클리프 얀 후스 에라스뮈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존 위클리프, 얀 후스, 에라스무스
Ⅰ. 존 위클리프 (John Wycliff 1324-1384)
1. 생애
1324년 경 영국의 요크셔에서 태어나 옥스퍼드에서 공부하고 1372년에 신학박사가 되었다. 위클리프는 신학교사로 거의 한 평생을 옥스퍼드와 인연을 맺고 살았다. 반교황정책을 취한 국왕과 존(John of Gaunt)은 왕권의 우위를 인정하는 위클리프의 이용가치를 인정하여 보호하며, 1374년 국왕사절로서 브뤼주에 교황측과의 교섭대표로 파견하였다.

귀국 후에는 런던을 중심으로 사도적 청빈을 설교하여 민중설교자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교회의 재산보유 등 교회제체에 대한 비판을 강하게 하였기 때문에 1377년 그 언동이 문제가 되어 교황 그레고리오스 11세로부터 19개조의 에 대한 지탄을 받았다. 1378년 교회분열이 있은 뒤에는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단정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알리기 위해 을 파견, 민중에게 복음을 전하였으며, 성서를 영어로 번역하기도 하였다. 또한 「성찬론」(1381)을 통해 가톨릭의 성체성사를 비판하기에 이르러 이단적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1382년 블랙프라이어스교회회의에서 위클리프의 주장 가운데 10가지 조항이 이단이라고 단정을 받는 한편, 농민봉기의 이론적 지도자 J.볼과의 관계도 의심받아, 정부 고관으로부터의 보호마저 잃게 되었다. 위클리프는 그때부터 루터워스에 숨어 살았다. 1428년에는 콘스탄츠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그의 유해는 무덤으로부터 파내어 불태워졌으며, 그 재는 근처의 템즈강에 뿌려졌다.
그의 학설은 영국에서는 롤라즈파 종교개혁자 J. 위클리프를 신봉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파. 환자간호와 장의(葬儀)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 영국의 탁발목사(托鉢牧師)들로서, 이들의 설교는 1381년 농민봉기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81년 정부는 롤라즈를 탄압하기 위한 최초의 법률을 제정하여 롤라즈를 검거하기 시작하였다. 82년에는 옥스퍼드대학에서 추방된 위클리프의 제자들이 각지에 흩어져서 스승의 가르침을 설교하였다. 이들은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은 법률은 무효라고 주장하였으나, 끈질긴 탄압 끝에 빠르게 쇠퇴하여 영국 비국교파(非國敎派)의 원류가 되었다. 15세기 중반에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으나 15세기 말에는 다시 활기를 띠어 루터파의 종교개혁운동에 합류하였으며, 그 후 성서의 영역(英譯)과 보급에 힘썼다.
에 의해 계승되었고, 유럽대륙에서는 프라하대학의 J.후스의 종교사상의 근간으로 받아들여지는 등 다양한 형태로 종교개혁의 원류가 되었다.
2. 주요 테마
1) 교황과의 대립
위클리프는 모든 합법적인 통치권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지상에서의 통치 성격도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오신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중세 교회는 교황을 중심으로 하는 성직자 계층으로 되어 있었다. 위클리프는 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예정 받은 사람들로 구성된, 보이지 않는 공동체라는 주장을 펼쳤고 성직자들 중에도 예정 받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교회의 법은 성경이지 교황이 자의적으로 만든 법이 아니라고 강하게 교황의 권위에 맞섰다. 교황의 면죄권도 강하게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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