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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성령이 암과 신사임당 의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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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두 성령이 암과 신사임당 의회화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고려 이후 조선시대에는 회화가 왕공사대부와 화원들에 의하여 발전하였다. 그러나 숭유억불정책에 따라 고려시대까지 회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던 승려화가들의 활동은 극히 미미하게 되었다. 승려화가들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일반 회화보다는 불교회화에 대체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일반 회화는 왕공 사대부와 화원들이 양 축을 이루며 발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왕공사대부들은 새로운 화풍을 수용하거나 창출하고 화원들의 시취, 승진 심사, 지도를 담당함으로써 사실상 화단을 주도했다고 볼 수 있다. 화론에 밝고 화격이나 화품을 아는 이른바 ‘지화격자’ 또는 ‘지화품자’로서의 이들의 역할은 따라서 지극히 크고 중요하였다.
학문과 문장은 물론, 음악과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던 세종대왕은 등극 이전에 난초와 대나무 8폭을 손수 그려서 주서 신인손에게 하사하기까지 하였다. 문인화의 주요 화제이며 후대에 사군자를 이룬 난초와 대나무를 세종대왕이 그렸다는 사실은 당시 왕실에서 문인화를 즐겨 하였음을 말해준다.
세종대왕의 예술적 재능과 예호사상은 첫째 왕자인 문종, 셋째 왕자 안평대군, 여덟째 왕자 영응대군에게서도 강하게 전해졌다. 이처럼 조선 초기의 회화는 세종조부터 왕실의 애호와 후원 아래 크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세종조와 문종조에 걸쳐 팽배하였던 왕실의 회화에 대한 애호와 후원은 세조조 이후 잠시 주춤하다가 성종조와 연산군에서 다시 활발해 졌다.
이밖에 효령대군의 아들인 영천군 이정은 뛰어난 산수화가였던 인물로 전해지며 성종의 아들인 이성군 이관은 공정대왕 및 정안황후의 영정을 봉심하는 일을 성세창과 함께 하였다. 이로 보면 이성구 이관은 ‘지화격자’였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세종대왕의 넷째 왕자 임영대군의 증손인 두성령 이암은 사노 이상좌와 더불어 중종 어용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보면 그는 초상화에도 뛰어났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는 오히려 강아지 그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이밖에 세종의 아들 영해군 이당의 아들인 길안도정 이의도 묵매를 잘 그렸다. 이처럼 조선 초기에는 여러 군왕과 왕자나 왕손들이 직접 회화를 즐겨 그리고 그것을 애호하며 후원함으로써 회화가 높은 수준으로 발전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2. 두성령 이암(1499 ~ ?)
자가 정중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의 증손인 이암은 실록에 보면, 이상좌, 이암이 모두 선화하고 되어 있어서 그들이 그림을 잘 그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암은 영모와 화조에 뛰어났지만 잡화라고 해서 개 그림, 고양이 그림을 잘 그렸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호암미술관 소장의 는 그의 화풍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꽃나무를 배경으로 하여 평지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세 마리의 강아지를 주제로 다루었다. 무엇인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검둥이, 낮잠에 빠져있는 누렁이, 벌레를 가지고 놀고 있는 흰둥이가 서도 다른 털 색깔과 행위를 보여주면서도 모두 한결같이 귀엽고 천진난만한 모습이다. 특히 강아지들의 눈매와 표정은 귀엽고 재미있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과 애정이 샘솟게 한다. 이는 실로 강아지들의 생태에 대한 애정 어린 관찰과 정확한 파악, 숙달된 솜씨와 요체를 드러내는 묘사력이 결합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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