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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죽거리 잔혹사 학교폭력이고 조적으로 어떻게 재생산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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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말죽거리 잔혹사 학교폭력이고 조적으로 어떻게 재생산되는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1978년 유신말기를 배경으로 당시 사회 전체에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던 군사주의 문화를 특정 개인이 내재화하는 과정을 상세하고 내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의 학교는 계급사회를 보는 듯하다. 교사들의 무자비한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일삼고 성적만을 중요시하며 차별을 하는 교사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수학문제를 풀지 못한다고 단세포에 빗대어 비하 발언을 하며 학생들의 인권은 무시당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수업시간의 장면을 살펴보면 교사와 학생간의 교류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의 대화도 일절 없으며 교사는 일방적으로 학생들에게 지식을 주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속 모든 수업시간 장면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전부 교사의 일방적인 수업이 행해졌다.
우리 조는 이러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시사하고 성찰해 보기로 하였다.
‘학교 폭력이 구조적으로 어떻게 재생산 되는가?’를 주제로 본론은 수업시간에 학습한 Bernstein 이론으로 영화를 분석하였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학교 폭력이 어떻게 재생산 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영화 속 사람들은 어떻게 성장하였으며, 현수가 교사가 되었다고 가정했을 때 현수는 영화 속 선생님의 모습일지 아니면 다른 교사의 모습을 하고 있을지 성찰해보며 결론을 맺었다. 영화 분석을 통해 어떤 수업과 어떤 교사상의 모습을 그려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하는 교사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Ⅱ.본론
교육과정 수업시간에 학습한 Bernstein의 이론으로 분석해 보면 교육과정의 횡적통합과 종적통합에서는 강한 분류화(C+)가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업에서의 교사-학생관계에서는 교사의 권위적인 모습, 교사와 학생사이에 서로 교류가 전혀 없으며 교사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수하고, 지식의 준거에 대한 결정권이 거의 교사에게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강한 프레이밍(F+)으로 분석될 수 있다. 현수와 우식이, 햄버거 등 영화 속 학생들의 생활 모습을 통해 학교 내에서, 학급 내에서, 학생들 사이에 계급이 있고, 사회적인 배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호간의 대화와 의사소통 기회는 거의 없으며 학생과 학생사이에 강한 경계가 생긴다. 이를 학생-학생 관계에서 살펴보자면 강한 분류화(C+)로 볼 수 있다.
학급 도난 사건에 70명 전원이 단체기합 - 선도와 체벌 한계 어디에
1983. 9. 24 [동아일보] 7면
“한번만 더 얘기하겠다. 체육시간에 00이 가방에서 돈 빼 간 친구는 오른손을 내려 가슴에 얹어라. 그러면 전체 기합은 끝이다. 생각해봐라. 나 하나 못된 짓 때문에 반 친구 70명이 모두 기합을 받아 되겠느냐? 양심이 있으면 손을 가슴에 대라. 모두 눈을 감았으니 보는 사람도 없다.”
교실 이곳저곳에서 훌쩍이는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주로 여학생이었다. 남학생들은 툴툴대며 낯모르는 범인을 향해 욕을 해댔다. “어떤 놈이야? 빨리 자수해, 팔 떨어지겠어!” 수군대는 소리, 훌쩍이는 소리로 교실 안이 웅성거렸다. 기진한 아이들은 대부분 머리 위에서 팔을 맞잡고 있었다. 갑자기 선생님이 몽둥이로 교탁을 쾅! 내리쳤다. 아이들이 움칫 놀라 진저리를 쳤다. 다시 선생님의 훈계. “안 나온단 말이지, 좋다. 누가 했는지 밝혀질 때까지 모두 학교에 남아 벌을 받는다. 쥐새끼 같은 도둑놈, 양심껏 자수하길 바랐는데 안 한다고? 내가 꼭 잡고야 말겠다. 범인을 아는 친구는 선생님께 말하라. 누가 얘기했는지 비밀은 철저히 지킨다!”
범인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약이 바짝 오른 선생님은 결국 매를 들었다. 처음엔 반장과 부반장의 종아리를 5대씩 때렸다. 곧 분단장들도 불려나가 종아리를 맞았다. 아이들 통솔을 제대로 못해 도둑이 생겼다는 거였다. 선생님은 매를 칠 때마다 교실 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친구가 죄 없이 맞는다. 그래도 안 나오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날 종례는 아이들 모두가 차례로 종아리를 맞고 한바탕 울음바다가 된 다음에야 끝이 났다.
또한, 체벌은 사전적 의미로 훈육의 한 방법으로서 특정의 행동을 중단하도록 하기 위해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것이라고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의 역사상 체벌은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기 보다는 사회적인 현상에 의하여 체벌이 강도가 강해짐을 알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체벌은 교사의 권위, 지배자 혹은 통제로써의 힘이 다분히 함께 했던 것으로 여겨지는 시기였으며 교육적인 체벌을 생각하기에 앞서 명령과 무조건적인 복종을 떠올리게 하는 시대였다. 사회적인 분위기에서도 서당교육의 초달문화와 군사부일체 도는 유교사상의 교육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분위기였고 식민지라는 독특한 사회적 상황도 크게 작용되었다. 그래서 교사가 가혹한 체벌을 해도 부모나 학생들은 모두 아무 반항 없이 체벌을 당연시하며 받아드렸다. 해방 후 1970년대까지의 체벌은 일제 강점기와 그다지 많이 다르지 않았다. 일제의 간섭과 억압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잠재적으로 체벌이 학습되어 졌으며 이시기에는 체벌이 아동을 훈육하는 수단이 아니라 통제하거나 학교 규칙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 아닌 단순히 교사의 분풀이의 체벌이 다분했으며 이는 일제 강점기 시대와 많이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는 현상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시대와 다른 점은 197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폭행이라는 표현보다 매질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였으며 학생들의 인격을 체벌과 함께 생각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사의 모든 행위를 받아들여야 했지만 이시기에는 간접체벌이나 심적 괴로움까지도 ‘학생체벌’의 범위에 들기 시작하였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체벌로 인한 사건이 수시로 발생되었다. 체벌의 범주에 단체기합과 같은 간접체벌, 폭언, 인격비하와 같은 언어적 정신적 체벌까지 포함되었다. 이시기의 교육학들은 간접체벌과 언어적인 체벌도 체벌로 분류된다고 이야기 하였지만 실질적으로 학교현장에서의 교사들에게 체벌은 도구나 신체를 이용하여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는 체벌만 의미하였다. 이시기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커져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체벌로 인한 사건 사고가 많아졌으며 체벌이 대법원에서 유죄로 판단되기 시작하였고 학부모가 교사의 학습지도 능력을 운운할 만큼 교육의 적극적인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1900년대로 들어서면서 문민정부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하였고 교육적으로는 개별화 교육을 주장하는 시기였다. 하지만 90년대가 되어서도 일제강점기에서 그랬듯이 체벌 하면 일단 폭력이 떠오르는 시기였고 그냥 폭력이 아니라 교육이라는 이름의 폭력이었다. 결국 체벌이라는 것이 시대가 변하면서 점진적으로 형태가 바뀌고 있지만 일제강점기 때부터 잠재적으로 체벌을 겪어왔기 때문에 학교 체벌, 폭력이라는 것이 의미만 바뀔 뿐 체벌이라는 것이 일제강점기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 체벌 - "학생 체벌 규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