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삼국시대 교육 추가한 국교 육사에서 삼국시대의 교육은 매우 독특하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대체로 ‘문무의 균형’, ‘심신의 조화’, ‘지덕체의 교육’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측면은 삼국 시대 이후 한국 교육의 흐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와 같은 특성은 삼국의 경쟁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무의 균형을 추구한 삼국의 교육활동(경당, 화랑도)은 삼국의 교육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이시기의 교육에 대한 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교육활동의 양상을 추정해 볼 때, 삼국시대의 비공식적 교육에 대해 정확히 알기 힘들지만, 당시 일상에서 종교가 차지한 비중을 고려할 때 종교가 당대인들의 정신세계와 교육활동에 미친 영향력을 생각해야 될 것이다.
삼국의 교육에서는 삼국 간의 보편성과 함께 각 국가만의 특수성 또한 발견할 수 있다. 모든 교육이 시대·사회적 산물임을 고려할 때, 이는 곧 삼국의 상황이 서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삼국 시대 이전에도 각 부족마다 고유의 교육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고려시대 교육
신라의 자멸로 전쟁 없이 평화 속에 수립된 고려는 신라의 문물제도를 크게 수정함이 없이 계승하였다. 따라서 이 시대 역시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불교가 사상의 주류를 이루었고, 교육은 당나라 제도에 따른 유교식이었다.
고려시대의 학교제도는 930년(태조 13)에 경학(京學)을 세웠고, 992년(성종 11)에 국자감(國子監)을 창립하였으며, 1053년(문종 7)에 사학(私學)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최충(崔沖) 등 12인이 사설의 학당을 개설하게 되어 소위 사학십이도(私學十二徒)를 이루게 되었다. 1271년(원종 12)에는 동서학당(東西學堂)을 세웠다. 지방에는 이와 대등한 향교(鄕校)가 있었으며, 국자감과 향교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문선왕묘(文宣王廟)를 두고 이를 중심으로 학문을 강(講)하는 명륜당(明倫堂)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중국 후주인(後周人)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958년(광종 9) 과거제를 실시한 일이다. 과거제가 시행됨에 따라 유학이 흥하게 되고 대유학자와 대정치가가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는 과거를 위한 시험 준비에만 급급하여 후일에는 과거제도의 폐해도 생겨났다.
1) 국자감
성종 11년(992)에는 태조 이후 교육기관이던 경학(京學)을 국자감으로 개칭하여 설치하였다.
국자감은 고려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신라의 제도를 계승하였다고 보고 있다. 국자감은 고려시대 국립교육기관으로 국가에서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최고의 교육기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