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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에 비친 유럽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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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거울에 비친 유럽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비유럽인
3. 비기독교인
4. 민중
5. 나가며(저자의 문제의식이 한국에 주는 시사점)
본문내용
2. 비유럽인

먼저 저자가 ‘공식적 유럽 역사관에 있어 주체에서 배제된’ 주체로 문제시하는 것은 ‘비유럽인’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1장 야만의 거울과 제7장 미개의 거울 그리고 제8장 진보의 거울이 주로 다루고 있다. 유럽 역사서술에 있어 비유럽인들에 대한 타자화는 그들이 자랑하는 역사의 시초인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까지 올라간다. 공식적 역사에 있어 고대 그리스는 자유, 평등, 민주, 문화로 대표되고 동시대의 비유럽세계인 페르시아는 야만, 잔인, 전제로 대표되었다.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에 ‘자유의 그리스와 전제 페르시아의 대결’로까지 표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야만의 거울’이라는 도식화를 통해 유럽인들은 비유럽인들에 대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그러나 저자에 의하면 그리스가 과연 위에 열거된 단어들로 대표될 수 있는지는 의문으로 남게 된다. 자유의 면에 있어서는 노예의 고통이 있었고, 평등의 면에 있어서는 여성의 예속과 부유한 시민과 가난한 농민 간의 엄청난 격차가 있었다. 또 민주의 면에 있어서는 경제적 사회적 위기 상황에 따른 마케도니아 압제의 수용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있었고, 문화의 면에 있어서 그들의 텍스트 주체는 극소수였으며, 그 텍스트의 문자도 페니키아인들을 비롯한 여러 비유럽인들의 공헌이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그리스 문화의 기원은 혼혈적인 것이었다. 그리스의 계승자로 자처한 로마에 대한 서술에 있어서도 비유럽인들에 대한 타자화에 빠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특히 그것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로마제국의 멸망에 대한 서술태도이다. 공식적 유럽 역사관은 로마 멸망의 원인으로 단연 켈트족과 게르만인들을 비롯한 ‘야만인’들의 쇄도룰 꼽는다. 이 야만인들은 오늘날 유럽세계를 이루고 있지만, ‘야만의 거울’로 당시의 세계관에 따라 지중해 세계만을 유럽세계라고 한다면, 이 야만인들도 ‘비유럽인’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로마 멸망의 원인으로 ‘야만인’이라는 ‘비유럽인’을 든다. 그러나 그 야만인이 누구였는지 고찰해보면 ‘야만인들의 쇄도’는 편의적 원인에 지나지 않고, 보다 근본적인 제국 멸망의 원인은 ‘빈부 격차의 증가 혹은 자유의 제한으로 인해 로마화하지 못한 농민들’과 같은 제국 내부적인 요소로 대체된다.
비유럽인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거울은, 종교적 일체감의 붕괴와 언어적 이질성의 심화가 진행되던 16세기 이후로는, ‘미개의 거울’과 ‘진보의 거울’로 진화한다. 유럽인의 도덕적, 지적 우월성에 대한 확신은 환언하면 비유럽인의 열등이었다. 비유럽인의 열등은 인종적 차이의 면에서는 ‘미개인’으로, 그들의 단선적 역사관에 의한 역사의 진행의 면에 있어서는 ‘원시인’으로 다시 환언되었고, 전자는 인종대학살과 노예무역으로 후자는 제국주의로 귀결되었다.

3. 비기독교인

다음으로 공식적 유럽 역사관에서 배제된 주체는 작동영역에 따라 비유럽인이 될 수도 있었고, 민중이 될 수도 있었던 ‘비기독교인’이다. 이는 유럽인의 정체성을 기독교에서 찾고자 한 ‘기독교의 거울’과 ‘악마의 거울’ 때문이었다. 원래 초기 기독교는 기원후 팔레스타인의 종교쇄신운동으로서 도시에 반대한 농촌운동의 성격이 강했다. 그리고 중간단계의 기독교는 기독교의 지지자가 부유한 시민, 여성으로 확산되면서 다원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학파로서의 여러 교파와 유대교가 공존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정치권력과 결탁하게 되면서 기독교는 일원적으로 변하였고 계서화하였다.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 공인은 그러한 기독교의 변모의 상징적 사건으로서 종교적 중앙집권과 관용시대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그러한 제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로의 개종은 도시지배계층에 한정되었고, 농촌 민중들의 고래의 토착적 신앙을 ‘대체’하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기독교‘만’이, 비기독교적 신앙과는 무관하게, 유럽인의 정체성을 대표한다고 해석하는 것은 ‘기독교의 거울’에 지나지 않는 지나치게 단순한 역사 해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아가, 중세시대 유럽인에 있어 기독교는 위의 ‘기독교의 거울’을 바탕으로 정치권력과 결탁해(귀족과 성직자 간의 동맹) 유럽 외부의 측면에서 작동(십자군운동에서 보여지는, 이슬람 교도와 동방 기독교 세계 등의 비유럽인에 대한 배척)하거나, 유럽 내부의 측면에서 작동(종교재판에서 보여지는, 서유럽 사회의 일부인 이단과 민중에 대한 탄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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