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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악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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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선과 악의 기준
복수[復讐] :해(害)를 받은 본인이나 그의 친족, 또는 친구 등이 가해자에 대해 똑같은 방법으로 해를 돌려주는 행위
복수의 의미는 말 그대로 그대로 해를 돌려주는 것이다. 지금껏 수많은 영화에서 복수라는 타이틀을 걸고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려고 노력했지만 복수를 주제로 놓고 다루기에는 플롯이 너무 일방적이고 복수의 완결로 엔딩을 마무리 하는데 불과했다. 하지만 박찬욱이라면 어떨까? 박찬욱이 만든 복수 3부작 , , 에서는 복수가 복수의 완료로 끝나지 않음을 보여주면서 복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박찬욱의 작품속에서 주인공들은 모두 입체적인 인물들이다. 영화 에 제시되는 주인공들을 보면 모두 초기에는 착하거나 평범한인물로 제시되어 있다. 치매노인의 바지를 입혀주고, 동반자살한 가족의 아들 보호자를 자처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샐러리맨이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자신의 순조롭던 인생에서 가족의 참사를 겪으며 서서히 변해간다. 류는 누나가 죽으면서, 동진은 딸이 죽었던 강가에서 그 외 주인공들도 다들 동기를 부여받고 다양하게 변해가는 면모를 보인다. 그들이 변해가는가는 과정은 모두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모두 착한 사람의 성격에서 복수라는 집념을 향해 쫒아 가는 냉정한 인간으로 변해가는 것을 공통점으로 들 수 있다.
3부작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복수하는 것을 모두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복수해야할 대상자에게서 가족이라는 존재를 사라지게 하거나 다치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서사는 이러한 이들에게 복수의 동기를 명확한듯 부여하고 있으며 귀에 거슬릴정도로 자극적인 사운드와 감옥이나 주인공들의 방에 있는 벽지나 화려한 색채로 관객마저도 동조하게 하는 그런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들의 대립구조를 분석해보면 에서는 류와 동진으로, 에서는 오대수와 이우진, 에서는 금자와 백선생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조금 더 명확한 기준으로 분류하자면 복수의 동기에 따라 자신의 실수를 남에게 전가시켜 복수하는 쪽과 타인에 의해 복수하는 쪽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에 속하는 주인공은 류와 이우진 금자씨이다. 이 세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의 복수에 대해 매우 집착하고 또 잔혹하게 복수 하려한다. 영화를 보면 관객들은 복수를 넘어서 잔혹하다고 느끼는 부분도 매우 많을 텐데 이는 이 세명의 주인공들의 복수 동기를 잘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
에서 류는 장기매매조직에게 신장을 잃는다. 그 후 누나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동진의 딸을 납치하게 되는데 그로인해 누나가 죽게된다. 결과적으로 누나가 죽은건 류의 유괴사건때문이다. 하지만 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장기매매조직에게 복수를 하게 된다.
에서 우진은 누나가 죽은이유가 오대수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누나가 죽기 직전 직접적인 선택을 하고 누나를 다리 밑으로 떨어지게 한건 우진이었다. 그러나 우진은 그 결과를 외면한채 상황을 그렇게 만든 오대수를 원망하게 되었다.
에서 금자는 자신의 딸이 납치당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원모의 살인범을 자처 했다. 자신이 원모를 죽인건 아니지만 원모의 죽음을 방관하고 있었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고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신이 깨끗해지기 위해 즉, 속죄하기 위해 복수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 주인공들은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모두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했던 가족이라는 존재를 위해서 복수를 한다고 영화속에서 자신있게 외치고 있다. 이것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중 하나인데 자기자신의 잘못보다는 타인의 잘못을 원인으로 생각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즉 잘못된 결과로 인한 피해의식은 자기합리화를 시키고 있으며 피해의식은 자기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모두 망각하고 있다. 그들이 망각하고 있는 피해의식은 타인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커져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세 주인공의 복수의 수법은 잔인하고, 지능적이며, 공포스러운 면이 많이 부각된다.
타인에 의해 복수 하는 쪽은 동진과 대수이다. 동진과 대수는 류와 이우진에 의한 피해자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오대수의 경우에는 자신의 말 한마디로 인해 수아가 자살했다는 의견 역시 제시 할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맨마지막 수아의 손을 놓은것은 우진이었기 때문에 수아를 죽인것은 오대수가 아니다. 우진은 수아가 죽은 사실에만 집착해 오대수에게 복수하려 하는 것이므로 오대수가 타인에 의해 복수의 동기를 제공 받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타인에 의해 제공받은 동기로 인해 결심하게 된 복수는 전자의 주인공들에 비해 납득하는데 있어 무리가 있다. 전자의 주인공들이 피해의식으로 인해 더욱 잔혹하고 공포스러웠다고는 하나 후자의 주인공들 역시 단순히 가족의 피해로 인해 광분하고 피해의식을 느끼는 것은 박찬욱의 코드가 가족중심의 우리나라 풍토를 극대화 시켜 꼬집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을 분류하는데 있어서 빠진 주인공이 있다. 바로 백선생인데 백선생의 경우에는 복수의 동기를 제공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복수의 동기를 제공받지도 않았는데 복수와 같은 유형으로 자신의 만족감을 얻으려 했기 때문에 복수하는 주인공이 분류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이 주인공은 영화속에서 복수라는 소재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함께 사회적인 기준으로도 복수를 해야하는 대상으로 또다른 인간의 욕망을 관객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백선생이라는 캐릭터를 굳이 복수라는 소재를 통해 분석하자면 아이를 낳을수 없는 능력 때문에 아이들에게 원한을 가지고 삐뚤어진 욕망을 발산하려고 한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박찬욱의 영화는 가족이라는 소재를 극대화 시킨점이 매우 잘 드러나고 있는데. 그 중 특히 올드보이는 원작과 비교해서 없었던 가족이라는 소재가 부각되어 드러남으로써 우리 한국인의 풍토를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의 가족문화는 조선시대때부터 혈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돕고사는 것을 덕목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따라 가족의 풍토가 우리사회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가족에 관한 코드는 박찬욱의 다른 영화에서도 드러나듯 정이 많고 서로를 잘 챙겨주고 이해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가족의 구성원이 가족이 아닌 누구에게 피해를 입었을 경우 가족들은 구성원의 복수를 위해 발 벗고 나선다는 것 역시 박찬욱은 생각하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영화를 보면 가족코드를 박찬욱은 적극활용함으로써 한국인의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한 것을 알 수 있다.
가족이외에도 인물들의 상황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또 다른 연관성이 제시된다. 우선 류는 청각장애인으로 누나의 복수를 하기전까지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하고 신장을 잃는 등 안좋은 일들의 연속이 계속되었다. 또한 동진역시 정리해고 한 사람으로 인해 심하게 스트레스 받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사소한 동기에도 극도로 받은 스트레스가 감정의 변화를 급격화 시켜 그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폭력성을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오대수와 금자역시 그러하다. 감옥에서 참고 눌러왔던 감정들이 사회로 나오면서 점차 커지고 그것은 바로 대립되는 우진과 백선생에게 쏟아지는 것일수도 있다.
복수 3부작에서 본 주인공들은 복수의 완결로 인해 자신의 만족감을 얻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과연 복수로 인해 만족감을 얻을수 있었을까? 영화의 결말을 보면 류는 장기매매조직을 살해한뒤에도 계속 경찰의 수사를 피해 도망다니는 신세로 자신이 죽인 동진의 딸에 대해 계속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동진 역시 류에게 복수하는 것에 성공했지만 영미에게 한 복수로 인해 오히려 살해당하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에서 대수는 복수를 하기위해 우진이 내는 문제를 열심히 맞추지만 그 복수는 오히려 자기자신으로 인한 것임을 할고 기억을 강제로 지워버리고 우진은 자신이 복수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복수는 오대수에게 해야할 것이 아님을 알고 자살해버린다. 금자 역시 두부케이크에 묻혀 속죄받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결말부에서 모든 주인공들은 복수를 통해 새로운 복수를 당한셈이다. 자신들이 원했던 복수의 종결 뒤에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가치관과 사회적 가치관의 으로 복수당하는것을 잊고 있었다. 자신들의 기준과 사회에서 맞추었던 도덕적 양심적 기준의 차이로 인해 그들은 다시금 복수를 당함으로써 결국 영화는 복수의 연속적 연결고리를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주인공들이 말하는 복수는 자기 자신의 피해 심리를 보상받기 위한 매개체로써의 역할을 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자기합리화에 따른 안타까운 결말은 복수가 감정적이고 폭력적인 것으로만 인식되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주인공에 국한된 복수에 대한 결론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보게 되는 속죄의 장면들은 자신의 가치관, 사회적인 가치관에 따라 다시 복수를 한 주인공에게 복수를 하게 된다. 즉, 모순에 의한 괴로움은 박찬욱이 생각하고 의도한 또다른 복수의 유형이라고 추정된다.
박찬욱감독의 복수3부작은 사회적이고 합법적인 복수보다는 원초적이고 폭력적이며 잔혹한 복수만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표현한 영화 뒷면에는 사회적, 도덕적인 면에서 주인공들의 마음속에서 실행된 복수 역시 숨겨져 있는 이면임을 문득 깨닫게 한다. 복수3부작을 보며 절실히 느꼇던 것은 선과 악의 정점에서 어느 한부분만을 가질수 없다는 것이었다. 선을 위해 악을 실천하고 악을 위해 선을 실천한다는 것은 모순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선과 악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이다. 기준은 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복수를 하는 것이 선이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악이라고 불렀다. 예를들어 금자 같은 경우 친절한 금자씨와 마녀 이금자로 선과 악으로 따로 불린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박찬욱이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선과 악의 기준을 떠나 인간 스스로의 기준에 의해 감정을 표현하고 드러내는 사람을 나타내며 선과 악의 경계는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