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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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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소크라테스에 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소크라테스에 대하여
1. 명언
수 많은 명언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그의 인생을 180도 전환시킨 유명한 말이 있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소크라테스가 델피(델포이) 신전에 새겨진 격언을 자신의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과연 우리의 출발점은 무엇일까?
2. 소크라테스의 일생
소크라테스[ Sokrates 469 - 399 BC ]
소크라테스를 3대성인의 반열에 올리는 이유는 그의 철학정신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그의 저서는 단 한 권도 없으며 제대로 쓰여진 적도 없다고 한다. 더욱 혼란스러운 것은 앤서니 케니의 고대철학에서 그의 대화를 설파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크세노폰의 묘사는 정확히 일치 하지 않으며 그의 처 크산티페[Xanthippe]에 대한 평가조차 엇갈리기도 한다. 아테네 교외의 알로페케라는 한 마을에서 출생하여 중산층을 영위할 수 있는 조각가와 산파를 직업으로 가진 부모 밑에서 나름 어렵지 않은 삶을 살아갔다고 한다. 그는 소피스트가 아니었다. 제자들은 스승이 어떻게 생활해 나가는지 몰랐으며 일을 하지 않았고 내일을 걱정하지 않았다. 여기에서 그의 처 크산티페와의 불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플라톤에 의하면 여러 자녀를 거느리며의가 돈독한 관계로 묘사된다. 그는 어디에서든 환영받는 지식인이었으며 소피스트와 달리 특정한 지식에 관여한 직업을 갖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생활해 나갔는지 아무도 몰랐으며 그 자신도 내일을 걱정하지 않은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자신의 만찬을 빛내 달라는 부탁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 자신도 제자들과 동석하기를 즐겼다. 소크라테스는 무슨 이유로 모든 이에게 이러한 환대와 존경을 받았을까?
소크라테스는 철학자이기 전에 인간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알키비아데스의 목숨을 구하는 모험에 서슴치 않았으며 술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과도하지도 않게 즐길 줄 알았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겸손이 수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으리라고 본다. 그냥 겸손이 아니라 누구 못지않은 지혜와 날카로움이 수반된 겸손이었고 무보수와 토론에 의한 합리적인 인정이었다. 플라톤의 ‘ 소크라테스의 변명 ’에서 극명히 들어나듯이 소크라테스식 아이러니와 같이 그는 지혜를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한 적 없으며 오직 지혜를 갈구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소크라테스 이전 밀레토스, 엘레아, 헤라이클레토스학파 등 철학을 이야기 하고 논의하던 부류가 있었지만 그들은 자연에 법칙이나 외계의 사물의 본성, 물질적이며 계량적인 구성요소를 탐구하는 자연철학자들이었다. 소크라테스도 이것을 어느 정도 긍정하며 좋은 일이라 이야기 했지만 그는 더 높은 곳을 이야기하는 철학자였다. 곧 그를 성인이라 부를 만큼 위대한 탐구인 인간의 정신에 대한 탐구, 즉 인간은 무엇이며 인간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와 자신의 소중한 신념, 독단, 공리를 의심할 수 있다는 것을 중요시 했고 억견을 가차없이 비판했으며 인간의 확실성에 대한 내면의 성찰에 그의 위대함은 담겨있다.
그의 힘은 군중이었다. 나쁘게 표현해 잡다한 대중들이었다. 당시 아테네 사람들은 덕의 의미는 무엇인가? 최선의 국가는 어떤 것이가? 에 대한 것의 토론이 격렬하던 시절이었다. 소피스트들은 신들을 부정했으며 그에 대한 공포로 유지되었던 신앙심에 의거한 도덕률에 도전을 하였다. 이 영향으로 어느 정도의 인식과 행동의 자유가 보장되기 시작했으며 이 문제는 가장 중요한 화두였다. 왜냐하면 당시 아테네는 마음을 흩트리는 개인주의로 사람들의 성격을 약화시켰고 그 결과 엄격한 훈련을 받은 스파르타 사람들의 희생물이 되었다. 탐관오리의 득세와 편협한 민주주의, 임관절차의 부패가 극에 달아 있었고 그에 아테네 사람들은 자신의 조국을 어떻게 하면 최상의 도덕을 발달시키고 부국강병을 이룰지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던 시기였다.
소크라테스에게 죽음과 불멸을 준 것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답이었다.
소크라테스 : 왜냐하면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일찍이 어지러운 정치에 관여 하려고 했다면 틀림없이 벌서 몸을 망치고, 여러분이나 나 자신에게 아무 이로운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도 외곬으로 반대해서,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정과 불법적인 일을 막을는 사람은 목숨을 오래 부지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진정 정의를 위해서 싸우려는 사람은, 그가 잠시라도 목숨을 부지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사사로이 살아가야 하며, 공적인 사람으로서 처신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나는 평생을 통해서 지금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질 것이고 사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또는 나를 모함하는 사람들과 내 제자라고 말하는 이들에게도 정의를 어기면서까지 굽힌 일이 결코 없었습니다. 게다가 나는 단 한 번도 어느 누구의 스승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째서 사람들은 오랜 시간을 나하고 지내기 좋아할까요? 여러분은 이미 그 까닭을 들었습니다. 아테네 시민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사실을 남김없이 말했으니까요. 즉,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면서도 사실은 그렇지 못한 사람이 검토되는 이야기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것은 재미가 있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런데 나로 말하면 신탁이나 꿈을 통해서, 또 그 밖에 신의 섭리로 인간에게 무엇이든 하라고 명령하는 모든 전달방법을 통해서, 신으로부터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고 나는 주장합니다.
결국, 그의 인생은 항상 진리의 본질을 탐구하는데 몸 바쳤고 거짓 진리를 폭로했다.
3. 소크라테스의 사상 및 저술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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