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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목적과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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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십계명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목적과의 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십계명의 렌즈를 통해서 보는 삶의 목적과 의미
제1장 옳은 일을 하는 것
저자의 저술목적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이웃의 목소리로부터 십계명으로 이끄는 음성이라고 기술한다. 그리고 현대 문화의 변화에 발맞추어 기독교에서 근본원리에 대한 재교육이 필요함과 그러기 위해서 우리를 부름 받은 공동체로써 도덕적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십계명의 역할을 강조하며, 그룬발트와 말을 인용해 기독교 신앙을 통한 회복을 희망한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찾는 시도를 방해하는 요인들에 대한 설명을 한다. 첫째 요인으로 성경에 대한 무지함을 말하며 새롭게 배워야 함을 강조한다. 두 번째 요인으로 구약 성경의 모호성을 언급하며 ‘은혜’와 ‘복음’을 신약성경과 동일하게 그리고 ‘율법’을 구약성경과 동일하게 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율법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도덕법, 의식법, 사회법으로 구별하여 신약시대에 대한 바른 적용을 설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약속의 후사며 도덕법에 대한 의무를 가진다고 설명한다. 세 번째 요인으로 구약 성경에 대한 대중 설교를 언급한다. 현재 교회에서 구약의 풍유적 설명이 지나침을 지적하며, 성경의 모든 인물과 기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과 그 백성간의 언약의 축소판인 십계명의 전거 출애굽기 2:20을 통해서 하나님 우리를 자기 백성 삼으신 것과, 우리가 복음을 통해서 자발적으로 순종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율법의 성격을 설명하기에 앞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영원한 뜻을 알고 있지만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알려주신 것이 십계명이라고 설명한다. 그것을 세 가지 용도로 나눠 설명한다. 사회적 용도에는 율법은 경찰과 같이 강제력을 뒷받침하는 억제책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신학적 용도는 율법이 하나님과 우리를 비교하게 하며 오직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도피처로 찾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도덕적 용도는 복음을 알게 된 사람을 율법이 정죄와 심판이 아닌 의의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2장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미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성경적인 하나님을 모르고 있음을 지적하며 실라주의에 대해 말한다. 바울이 아테나에서 본 것과 비교하여 하나님이 참 신이시며 절대 주권자이심을 이야기한다. 하나님은 상호협조의 차원이 아닌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차원이라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우상숭배가 출애굽의 시대와 현재가 다르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와 다른 결정을 내릴 때 마다 우상숭배를 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이 주신 것을 통한 기쁨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을 때 그것이 우상이 되는 것이다. 그 예로 현대인의 중독이 곧 우상이라고 설명하며 또한 현대 과학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첫째 계명에서 우리를 향한 복음의 내용을 알 수 있으며, 우리가 중심이 아닌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이며 감사의 동기인 것이다. 그러므로 다른 것을 우리의 중심으로 감사의 동기로 두는 것이 우상숭배이다.
다음으로 현대 교회에 있는 우리의 우상들 그리고 보수적 기독교인이 감추고 있는 우상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우리의 무의식 가운데 있는 민족주의, 미신, 상업, 유희에 대한 우상들이 우리가운데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믿음 자체를 믿는 것에 대한 경고를 한다. 성경적으로 믿음은 능력이 아니며 믿음은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의 통로라고 말한다. 또한 믿음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있는 권능을 인간에게 부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체험을 믿는 믿음을 경고한다. 체험을 정당화하기 위해 말씀을 이용하는 것과 자신의 체험을 믿는 것은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지식보다 예수님과 자신의 관계에만 집착하는 것에 대해서 경고한다. 이런 것은 하나님의 보좌를 침해하는 것이다. 또 사랑을 믿는 믿음에 대한 경고를 한다. 이것은 감상적인 성격을 띠며, 하나님의 다른 속성을 무시하며 사랑만을 내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속성가운데 하나를 우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복음과 권징을 가로막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사랑해야할 대상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자아를 믿는 믿음에 대한 경고를 한다. 우리 자신이 신이며 하나님을 도구로 생각하는 것과 자아도취에 대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오해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행복을 믿는 믿음에 대해 경고한다. 행복이 우상이 되어버렸지만 행복을 숭배할 때 우리는 넘어진다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진리를 추구할 때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에 대한 이교도의 반응이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로 이 명령이 다른 신적 존재의 여지를 주지 않기 때문에 제한적이라고 말한다. 둘째로 이것이 인간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주의라는 것이다. 셋째로 이 명령이 독단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이러한 추세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보편구원론이다. 지옥에 대한 것에 부정적인 심리와 행위를 통한 구원을 통한 것은 우리의 이성을 신뢰함으로 만든 우상이다. 계몽주의 이후로 종교성에 대한 확신을 주장하는 것은 불확실한 일이며, 이로 인해 신앙주의는 종교는 우리가 조사할 수 있는 너머에 있기에 우리의 신앙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를 통해 종교다원주의를 설명할 수는 없다 실제로 예수님은 배타적인 분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애와 존재에 완전하고 충분한 권리를 소유하셔야 한다. 우리는 종교적 진리에 주장에 나타난 배타성과 인종적 문화적 사회경제적 배경에 나타난 배타성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는 오히려 문화다원주의를 그 본질로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기도하는 문제에서 불신자의 기도가 반복음주의에 동참하며 예수님으로 부터 사회적 상실감을 약화시키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구원보다 사람의 인식과 대중적인 지지에 더욱 민감할 때 예수그리스도의 입지는 점점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을 배제한 모습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이것을 허용하지 않으신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첫 계명으로 부터 하나님 한분 외에 믿음을 두지 않으며, 구원이 오직 삼위하나님에게만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일치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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