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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영화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 속 일본 환경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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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 영화 센과 치이로의 행방불명 속 일본 환경과 문화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2002년 여름 국내에 개봉되었던 일본의 애니메이션 영화 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을 뿐 아니라 올해에도 상 당히 높은 비디오 대여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 영화가 전세계적으로 많은 인기를 누린 것은 단지 재미있는 영화라는 이유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 기저에 깔 린 짙은 일본 색채가 이 영화를 더욱 값지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는 국경과 통신의 장벽이 제거된 고도정보사회이며 전지구적 개방체제의 세계이다. 갈수록 지구는 하나라는 말이 실현 되어 가고 있고 국가와 민족의 개념이 와해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차별화되고 고급화된 한 나라의 문화는 그 특수성이 부각되어 나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상세히 소개되고 있는 일본의 고유문화는 다른 문화권에서 사는 서양사람들에게는 더욱 흥미롭고 보석처럼 빛나는 가 치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2002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대상인 최우수 작품상(금곰상)을 수상하기에 어려 움이 없었으리라 여겨진다.
미야자키는 2차대전이 끝나기 얼마전인 1941년 1월 5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큰아버지가 경영하는 비행기 회사에서 공장장으로 근무하는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고등학교 때 이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로 결심했으나 단지 테크닉만을 배우기 위해 미술학교에 진학하긴 싫었던 그는 학습원대학 정치경제학부에서 일본산업론을 전공했다. 미야자끼는 대학 재학시절 만화에 뜻을 두고 만화연재를 시작했는데, 그것을 실은 매체는 일본 공산당의 기관지인 아카하타 였고, 사막의 백성이라는 제목의 SF와 마르크스주의를 결합시킨 만화였다. 63년 대학 졸업 후에는 도에이 동화에 입사해 애니메이터가 되는데, 입사이유는 "미제국주의 디즈니에 대항하는 애니메이션을 일본에서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연수를 마친 후부터 멍멍이 충신장, 걸리버의 우주여행등의 작품에서 동화를 담당했다. 이 즈음 소련의 장편 애니메이션 눈의 여왕을 보게 되고 자신의 길에 확신을 얻는다. 그곳에서 미야자끼는 주도적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하며 서기장이 되었고 당시 부위원 장이었던 다카하타 이사오를 만나는데, 이후 둘은 평생 창작의 동지로서 함께 하게 된다. 그 시절 미야자끼는 사상과 철학, 사회주의 등에 식견이 깊은 다카하타의 영향을 받으며, 다카하타가 감독을 맡게 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이라는 장편 만화영화의 제작에 메인스텝으로 참여하여 당시 상업 만화영화로서는 획기적인 여러 실험들을 한다. 그러나 너무 왕성했던 열정과 회사와의 마찰로 인해 제작이 지연되었고, 결국 흥행에서도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은 기존의 만화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인간 내면 심리의 묘사, 군중 드라마, 일반 민중의 생활상의 자세한 묘사 등이 훌륭했으며, 나중의 지브리 작품들의 원형이 되었다. 이 작품에서부터 미야자키 만화 영화들을 관통하는 이상주의적 주제, 사실적 표현기법을 찾아 볼 수 있으며, 권력과 폭력에 대항한 이상적 사회건설의 희망을 읽을 수 있다. 1971년에 다카하타와 함께 A프로덕션으로 이적한 후인 1978년에 TV 애니메이션 미래 소년 코난을 통해 연출자로 데뷔를 하였으며, 극장용 애니메이션의 연출 데뷔는 그로부터 1년 후인 79년에 루팡 3세 : 카리오스트로의 성에서 이루어진다. 미일 합작 애니메이션 리틀 니모의 연출을 포기하고 매달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하였다. 같은 해 도쿠마 서점의 도움으로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한다. 스튜디오 지브리를 통해 다카하타 등과 함께 작업한 여러 편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고 작품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음으로써 지브리의 애니메이션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주제와 형식을 통해 저패니메이션의 한 축이 되었고, 이 때부터 만들어진 미야자끼의 장편 만화영화들은 높은 완성도와 깊은 주제의식으로 일본 뿐 아니라 전세계 애니메이션 매니아들을 사로잡게 된다. 86년 천공의 성 라퓨타, 88년 이웃의 토토로, 89년 마녀 우편배달부, 92년 빨간 돼지 등 스튜디오 지브리 설립 이래 그의 작품들에도 역시 과거 그가 관여했던 경험들이 관통하고 있으며, 사실적 표현기법을 통해 이상주의적 주제를 현실화시켜내는 그의 작업은 완숙함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자신의 장편 영화들을 감독하는 사이사이에 다카하타 감독의 87년 문화기록영화 야나기가와 운하 이야기의 제작, 91 년 추억은 방울방울의 제작프로듀서, 94년 헤이세이 너구리 대작전의 기획을 담당하기도 했다. 92년 지브리의 신사옥을 도꾜에 준공한 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아니마쥬 연재를 10년 만에 종료했다. 95년 오랫동안 자신의 작화 감독으로 일해온 콘도 요시후미를 귀를 기울이면을 통해 감독 데뷔시켰다. 미야자키는 모노노께히메를 97년 여름에 개봉해 흥행에 성공함으로써 미야자키의 건재함을 다시 과시했다.
이 영화의 제목이 갖는 의미 미야자키 감독 영화의 일관된 주제는 , ,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과 자연간의 교감과 화해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서구적 사고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서구식 사고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자연의 도전에 응전해 나간다고 보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을 모순과 충돌하는 관계로 설정하고 있지 요. 그들은 이 같은 목적을 효과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 자연을 객관적으 로 파악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동양의 자연관은 어디까지나 인간이 자연의 한 부분이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외칩니다. 미야자키 감독의 애니메의 세계는 이런 동양적 자연관으로 넘실됩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원제는 입니다. 영화를 보신 분은 다 아시다시피 센과 치히로는 동일 인물입니다. 인간 세상의 이름이 치히로인데 신령들의 세계에 들어간 뒤에 이름은 센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여기서 재미있는 트릭을 씁니다. 일본어를 조금 만 배운분들은 다 알겠지만 일본어는 음독(音讀, 온도꾸)으로도 훈독(訓 讀, 쿤도꾸)으로도 표기할 수 있습니다. 千(천)을 음독으로 하면 센(せ ん)이구 훈독으로 하면 치히로(ちひろ)의 치(ち)가 됩니다. 우리가 데카르트적 눈으로 본다면 일면만 파악하겠지만 거기엔 또 다른 세계(즉 신령들의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음독으로 읽을 수 있고 훈독으로 읽을 수 있는 일본 문자와 마찬가지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치히로(千尋)는 헤아릴 수 없는 깊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 다. 센(千)이 숫적이면서 횡적인 넓이를 말한다면 치히로(千尋)는 질적이 면서 종적인 깊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미야자키는 데카르트가 함수 좌표 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증명하고 있는데 비해 음독과 훈독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방불명이라고 번역되어 있는 카미가꾸시(神隱し)라는 말을 살펴봅 시다. 우리나라 말로는 행방불명 정도로 번역 밖에 안되지만 이 말은 원래 아이들이 갑자기 행방불명되면 신령이나 정령들이 아이들을 데려 갔다라는 말에서 나왔지요. 행방불명이라는 말이 철저히 인간 중심의 현대적 말이라면 신령이 아이들을 데려갔다라는 말은 자연의 힘과 존재 를 의식한 일본의 전통이 담겨 있는 말입니다.
거미할아범 추가내용.
끊임없는 노동의 저주를 입은 아라크네를 떠올릴 수 있겠지요..(아라크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미가 된 처녀.. 아테네 여신의 저주를 입어.. 아시죠?) 신화에 박식했던 미야자키였으므로 이정도의 전고를 떠올릴 것이란 추측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란 뜻은
(饒:(요)니기, 速:(속)하야, 미는 일본어로 물을 뜻하는 미즈(水)의 미, 琥(호)코, 珀(박)하쿠, 主(주)누시) 뜻을 풀이하자면 풍요롭고 물살이 빠른 코하쿠강의 주인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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