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머신

예술의 이해 아리스토텔레스

 1  예술의 이해 아리스토텔레스-1
 2  예술의 이해 아리스토텔레스-2
 3  예술의 이해 아리스토텔레스-3
 4  예술의 이해 아리스토텔레스-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예술의 이해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미학오디세이 책을 읽고 내용에 나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시학 중에서도 희극을 중점적으로 설명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인의 임무가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날 법한 일‘을 말하는데 있다고 주장한다. 시는 필연적으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날 것 같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는 여러 가지로 보편성을 갖는다. 여기서 시는 희극, 비극, 음악, 무용 등을 포함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역사는 고작 한 번 일어났던 개별적 사건을 말할 뿐이다. 누가 언제 무엇을 어디서 했다고.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가 역사보다 철학적이다 라고 말한다. 철학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진리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로 남겨진 사건들. 요즘 텔레비전에서 하고 있는 ‘제5공화국’을 예로 들어 보자. 전두환이라는 인물이 박정희 시해사건을 틈타 1979년 12월 12일에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신 군부세력을 중심으로 정권을 잡은 사건을 바탕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이런 사건은 현재 일어나서 역사로 남아있지만 다시 일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그만큼 보편성이 작다. 하지만 예전에 개봉되었던 유하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는 다르다. 이것은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예전에 또는 현재에 일어났을 번한 일들을 시나리오로 만들어 영상으로 보여준다. 이 영화에 나오는 상황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당해보거나 아니면 그 반대쪽에서 경험해 봤을 것이다. 아버지 세대 때는 고등학교에서 군대식 교육을 받았고 교련이라는 과목이 존재했다. 그리고 힘센 자가 사라 남는다는 사실을 그때부터 느꼈을 것이다. 나도 중학교 때 강한 자가 약한 자을 괴롭히고 구타하는 모습을 많이 봐왔다. 폭력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굉장히 부끄럽고 나약하게 느꼈던 적도 많았다. 그래서 ‘말죽거리 잔혹사’를 볼 때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있었을 것 같은 이런 보편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 위에서 말했듯이 시이다. 플라톤은 철학을 합리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했고 시는 뮤즈 신에게 영감을 얻어서 광기로 표현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시를 테크네라고 말한다. 시인에게 어느 정도의 광기가 필요한 간 사실이지만, 시는 어디까지나 테크네(예술)라는 주장이다. 시가 그림이나 조각처럼 제작 기술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시인 자신은 인식을 못하더라도 말이다. 결국은 시가 어떤 연감을 받아서 되기도 하지만 철저한 작업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하나의 드라마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수많은 기술과 작업이 필요하다. 요즘 한참 재미있게 보고 있는 ‘신입사원’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이 드라마가 제작되려면 우선 작가가 극의 구체적인 상황을 대본으로 만들고 이 대본을 가지고 배우들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한다. 조명이나 무대감독들은 드라마가 더 멋지고 사실적이게 나오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감독은 이 모든 작업들은 전체적으로 조율하고 통제한다. 에릭이라는 배우가 연기를 할 때는 짜여진 각본에 의해 드라마를 찍는 것이다. 배우가 신내림을 받아서 즉흥적으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체계적인 작업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박하사탕’의 설경구의 연기가 그러하다. 영화 초반에 기찻길에 올라 ‘나 다시 돌아갈래 ~ ’를 외치는 설경구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소름끼치게 한다. 그의 붉게 충혈된 눈과 뛰어나올 것만 같은 핏줄은 신에게 영감을 얻어 광기를 표현하는 것만 같다. 이와 같이 기술이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의 본질이 ‘모방’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필요한 이유는 진리를 얻기 위해서다. 모방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보기 흉한 동물이나 시체도 아주 정확하게 그려놓으면 쾌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데스티네이션’같이 잔혹한 영화를 볼 때 우리는 소리를 지르면서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본다. 이런 공포심이 우리에게 쾌감을 주기 때문이다. 공포영화도 같은 원리이다. 실제로 본인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면 쾌감이 극도의 정신적 혼란과 공포로 바뀌겠지만 이 영화들을 보면서 관객들은 이것은 현실에 대한 모방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배우는 것이다. ‘이하, 이건 단순히 영화일 뿐 이구나’ 하고 무언가를 ‘재인식’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고상한 지적 쾌락이라고 말한다.
시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으뜸으로 뽑고 있다. 그가 내린 비극의 정의는 이러하다. 비극은 진지하고 일정한 크기를 가진 완결된 행동의 모방이다. 본디 아름다움은 ‘크기와 질서’에 있어서 너무 작거나 너무 크면 아름답다고 볼 수 없는 법이다. 일정한 시간 안에 완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극이나 영화가 2시간 정도 사이에 모든 사건이 마무리되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한다. 또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환기시키는 사건의 모방이다. 주인공에게 닥쳐오는 무서운 운명을 보면서 사람들은 측은하면서도 무서운 느낌을 갖게 된다. 다른 사람의 일로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JSA공동경비구역’에서 주인공 이병헌과 송강호가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인해 서로를 쏴야 했을 때의 장면은 관객의 표정을 파랗게 질리게 했다. 이것이 바로 연민과 공포의 효과이다. 비극은 사람의 감정을 극도로 흥분시킴으로써 오히려 그걸 진정시키고 정화한다. 굉장히 역설적인 표현이다. 비극을 봄으로써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공포를 배설해버리고, 후련해진 마음으로 극장 문을 나서게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비극의 기원은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불리던 합창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지휘자와 합창단이 주고받는 대화가 점차 발전해서 극적인 대화가 된 것이다. 한국적인 소재로 말하자면 소리만 하던 창에서 소리와 대사를 동시에 하는 판소리로 발전한 것을 들 수 있겠다. 이렇게 발전한 판소리에서 다시 소설이 탄생한다. 춘향가에서 춘향전으로, 심청가에서 심청전으로, 흥부가에서 흥부전으로 음악적인 요소에서 극적인 요소로 변화하는 것이다.
비극은 플롯, 성격, 사상, 대사, 노래와 장면이라는 6가지 요소로 이루어 졌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플롯이 비극의 생명이자 영혼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플롯이란 줄거리를 말하는 것이다. 훌륭한 비극이 되려면, 일반인과 같은 사람이 악행이 아니라 악의 없는 중대한 ‘과오’의 대가로 불행해져야 한다. 가엾다는 감정은 부당하게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생기고, 두려운 감정은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불행에 빠지는 것을 볼 때 생긴다. 위에서 말했던 영화 ‘박하사탕’도 비극작품 중에 하나이다. 설경구가 처음에는 잘 살았었는데 주위환경에 의해서 점점 인생이 망가져 갈 때 관객들은 가엾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시실리2km’에서 나왔던 돈에 눈먼 동네주민들과 같은 악역이 불행해지면 관객들은 반대로 고소하고 좋아한다. 어떤 사람이 불행해 지느냐에 따라 비극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그래서 비극 작품에서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 불행해지는 모습을 담아야 한다. 플롯은 다시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급전과 발견과 파토스다. 급전이란 사태가 갑자기 반대 반향으로 돌아서는 것을 말한다. 영화 ‘편지’에서 박신향과 최진실이 행복하게 잘 살다가 박신향이 불치병에 걸려서 한순간에 불행해 지는 모습을 급전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파토스는 이 상황에서 두 주인공이 당하고 있는 찢어지는 고통을 말한다. 발견은 말 그대로 운명을 깨닫는 것을 말한다. 가령 박신향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 순간 박신향의 운명은 급전을 일으킨다. 이처럼 발견이 급전을 동반할 때, 최고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비극은 배가되는 것이다. 급전이나 발견은 플롯의 구성 그 자체에서 나와야 한다. 말하자면 앞서 일어난 사건의 필연적인 결과라야 하는 거다. 한 사건이 다른 사건 ‘ 때문에’ 일어나는 것과 그 사건에 ‘이어서’ 일어나는 것은 엄연하게 다르단 말이다. 서로 관련되어있는 에피소드들이 서로 질서 있게 나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는 일은 다음 사건의 단서가 되고 다음 사건은 그 이후 사건의 단서가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다.
비극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주인공의 운명이 급전되기 전까지를 ‘갈등’이라 하고, 그 뒤를 ‘해결’이라 한다. 그런데 ‘갈등’을 훌륭하게 짜놓고 ‘해결’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을 크게 벌려놓고 수습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도 예전에 글을 아주 조리 있게 잘 쓰다가 내용이 삼천포로 빠져서 주제와 점점 멀어지게 되고 결국 글을 망치게 된 적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복잡하게 얽힌 갈등을 풀기 위해 신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하늘에서 신이 기중기를 타고 내려와, 실타래처럼 얽힌 갈등을 해결해준다는 것이다. 이 수법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부르는데 ‘기계 장치를 타고 내려오는 신’이라는 뜻이다. 가령 난데없는 우연한 사건으로 극을 해결하는 작품을 종종 볼 수 있는데, 후세 사람들은 이런 작품을 욕할 때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극이 좀처럼 해결의 가닥을 보이려 하지 않을 때 극을 우연한 사건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자주 이런 모습들이 보여 진다. 복잡한 장소에서 주인공들끼리 마주친다던가, 항상 엘리베이터를 타면 주인공과 관련된 사람들이 타있다던가 하는 경우가 많다. 하긴 생각해 보면 현실과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우연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으면 극의 반전이나 재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 짧은 순간동안 여러 가지 사건을 종합하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는 아무리 그런 사건을 만들어 보려고 해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우연찮은 사건이 본인에게 일어나면 이거, 마치 드라마에 한 장면 같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론에 대해서 알아 봤다. 이를 종합해 봤을 때 그의 시에 대한 생각이 현대 영화나 드라마, 연극이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는데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00년 전 철학가가 말한 이런 사상들이 지금도 많은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놀랍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없었다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