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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역사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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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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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터키의 역사는 B.C. 3세기께 중국의 북방에서 건국되어 한나라에 위협적 존재로 여겨졌던 흉노 제국에서부터 시작된다. 흉노는 기마와 궁술에 능해 철제 무기를 바탕으로 스텝의 서쪽 지역에서 활동하던 스키타이인들과 대결하는 한편 한나라를 공략하였다. 그러자 비단길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필요성을 절감한 한무제는 강력한 흉노 토벌 정책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한무제의 흉노 정벌로 인하여 흉노의 중국 변방에 대한 침공이 중단되고, 국가의 수입이 감소하여 흉노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내부적으로는 권력 투쟁과 귀족, 관료, 왕자들 간의 알력과 갈등도 심화되어 흉노 제국은 급속히 약화되어 48년에 남흉노와 북흉노로 분리되었다. 남흉노는 중국과 북흉노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다가 216년에 중국에 복속되었고, 북흉노는 독립 국가 형태를 유지하며 후한과 대립하였으나 선비족과 연합한 한나라에 패한 후 흩어졌다.
2. 돌궐 제국
흉노 제국에 이어 스텝 지역을 통일하고 투르크계 종족들을 통합한 것이 6세기의 돌궐 제국이다. 돌궐 제국은 처음으로 `투르크라는 정식 명칭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돌궐 제국의 창건자인 부민은 연연 치하에서도 연연의 공주와의 혼인을 요구하는 등 완전한 예속 상태가 아닌 독자성을 유지하며 서위와 연합하여 552년 연연을 멸망시켰다. 부민이 사망하자 스텝의 관습대로 형제, 자식에게 분배된 제국은 서부는 동생 이스테미가 통치하였고, 동부는 아들 무칸이 통치하였다. 서부 지역을 다스리던 이스테미의 정복 사업으로 당시의 세계 제국인 사산조 페르시아와 비잔틴과도 대등한 입장에서 정치적경제적으로 관계를 수립하였고 실크로드상의 요충지들이 돌궐 제국에 편입됨으로써 내륙 아시아 실크로드 중개 무역을 투르크인이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칸과 이스테미 사후 돌궐은 카간위를 둘러싼 권력 투쟁으로 동서로 완전히 분리되었고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에 의해 스텝의 패권을 상실하게 되었다. 수나라 조정은 동서 돌궐의 분열과 내분을 획책하고 최대한 이용하며 동돌궐에 비해 군사적정치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서돌궐을 막기 위해 동돌궐을 적당히 지원하여 예속시키는 정책을 구사하였다. 수에 예속되어 그 존재를 유지하던 동돌궐은 수나라가 고구려 원정에 전력을 기울이는 틈을 타 도전을 감행할 수 있었으며, 당조를 건설한 이연과 이세민을 지원하여 수의 몰락을 가속화시킬 수 있었다. 당이 내부의 정비와 중원 지배에 골몰해 있는 동안 동돌궐은 변방 확장에 성공해 옛 땅을 거의 회복하였으나 내분과 당태종의 출병으로 인하여 멸망하였다.
서돌궐은 동돌궐과 완전히 결별한 상황이었으나 동돌궐의 중국 복속에 분개하여 여러 차례 도전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서돌궐 역시 내분으로 인하여 658년께 중국에 완전히 복속되었다. 630~680년에 이르는 50년 동안의 암흑기를 거쳐 680년께 다시 당에 대항해 후돌궐 시대를 열게 되었다. 쿠틀룩에 의해 재건된 후돌궐은 외튀켄을 중심으로 강성해졌으며 그의 동생 카프간이 통치권을 이어 받으면서 중국 공략을 더욱 강화하였고 서부 군대로 하여 트란스옥시아나 주변에 대한 정벌을 계속하여 실크로드 교역을 위해 이 지역에 대한 소유권을 더욱 확고히 하려 하였다. 그러나 세력을 확대하고 있던 아랍과 티벳의 도전을 받고 돌궐 국가 부족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 731년 이후 돌궐족의 통합은 와해되었다. 그 후 751년에 티벳, 아바시야조 연합국과의 탈라스 전쟁에서 당나라가 패하게 되자 탈라스 이서 지역과 트란스옥시아나 지역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은 사라지게 되었다. 이 때부터 서돌궐은 이슬람의 영향을 받게 되고, 동돌궐은 스텝 전통을 유지하며 불교를 믿다가 후에 몽골과 합류하였다.
3. 위구르 제국
돌궐 제국의 멸망으로 스텝에서 새롭게 투르크의 종족적문화적 전통을 계승한 나라가 위구르 제국이다. 과거 돌궐 제국의 중심지인 북아시아 지역에 제국을 건설한 위구르는 13세기 몽골족이 이 곳의 지배자로 등장할 때까지 중국 문화권과 마지막으로 대결한 투르크 민족 국가였다. 위구르인은 전통적 유목 생활에서 정착 농경 생활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종교와 사상을 수용하였고, 유목과 농경, 동서 문화를 두루 수용하고 융합한 수준 높은 위구르 문화를 이룩하였다. 위구르는 중국과는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에 있었으나 돌궐과는 적대적이고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위구르족이 주도한 부족 연합은 혼란한 상태에서 돌궐을 멸하고 745년에 외튀켄에 위구르 국가를 세웠다. 위구르는 농경 정착 생활로 변모해 가면서 중국 문화의 수입과 교역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중국으로서도 위구르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만큼 군사력이 강하지 못했으므로 이 두 나라는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안사의 난 이후 티벳의 흥기로 당에서는 위구르의 원정을 요청했고, 이 결과 위구르는 마니교를 공식적인 종교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위구르는 급격한 문화적사상적 변화의 부작용과 예니세이 강변에서 새롭게 부상한 키르기즈의 침공에 의해서 종말을 고했다. 패망한 위구르인 가운데 일부는 중국으로 잠입하기도 하고 또는 내륙 아시아로 이주해 생존하며 위구르 제국의 재건을 준비하였다. 847년께 칸수 지방에 정착한 위구르 씨족 연맹의 일부는 독립 국가를 이룩하기도 하였으며 현재까지 중국에서 주요한 투르크 민족의 후예로 잔존해 있다. 한편 내륙 아시아로 이주해 갔던 위구르인들도 독립 국가를 형성해 살면서 중국에 이슬람교를 전파하였다.
4. 대셀주크 제국
위구르의 등장으로 돌궐 제국이라는 체제 속에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던 투르크족의 연합이 와해되었다. 그러나 11~14세기 투르키스탄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에 형성된 대제국인 대셀주크 제국에 의해 투르크족은 이슬람 세계로 재통일되었다. 이슬람을 받아들인 투르크족들은 무슬림 아랍 국가들을 침입하기보다는 성전 원리에 따라 이교도인 비잔틴 제국을 공략하여 1071년에는 대셀주크 제국의 술탄 알프아슬란이 비잔틴 제국의 접경까지 진출하였고, 말라즈기르트 전투에서 비잔틴 제국의 디오게네스를 격퇴하여 비잔틴 지역의 핵심 지역을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게 하고 아나톨리아에 새로운 터키 공화국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란 지역에서 형성된 셀주크 왕조는 일반적으로 대셀주크 제국으로, 그리고 소아시아 지역의 셀주크 왕조는 소아시아 셀주크 국가라 구분하여 지칭되고 있다. 비잔틴 제국 영토의 일부를 기점으로 하여 서부 아나톨리아까지 확대한 소아시아 셀주크 국가는 11세기 말부터 시작된 십자군 원정으로 군사력을 소모하는 등 심각한 위협을 받았으나 12세기 후반 술탄 클르츠 아르슬란의 등장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갈 수 있었다. 1176년의 미리오케팔론 전투의 승리는 말라즈기르트 전투에 이어 아나톨리아에 투르크족의 근거를 확고히 하는 동시에 이후 비잔틴과 투르크의 대결에서 투르크에 유리한 입장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셀주크족은 스스로 성자임을 자칭하며 추종자를 모으는 바바 일리야스라는 사람과 바바 이샤크의 반란으로 인해 혼란해졌고 이 틈을 타 침략해 온 몽골군과의 쾨세다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소아시아 셀주크 국가는 막을 내리고 말았다(1308).